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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인천유람일기(86) 비옥한 시간이 주단처럼 펼쳐진 곳, 경인종합상가 일대
비옥한 시간이 주단처럼 펼쳐진 곳, 경인종합상가 일대



주안이 활짝 피었습니다!, 2022ⓒ유광식

8월 첫 주말의 비 피해가 매우 컸다. 무더위에 가족과 휴식을 취하기도 바쁜데 전국적으로 수해가 커서 모두가 놀랐다. 부디 빠른 피해복구와 안정이 내려앉기를 바란다. 지난 석 달간 귓속에서 맴돌던 개구리 소리가 그친 줄도 모르다가 바통을 이어받은 매미 소리에 문득 시간을 깨닫게 된다. 철 따라 배달되는 소리에 여러 가지 생각을 담고 있으면 괜스레 쌓이는 시간만 탓하며 지난 추억을 되짚게 된다. 분명 자신만의 시대가 있었고, 이를 보증하는 것들이 오래도록 남아 주는 데에 이의를 던지는 이는 없다. 우리는 현대라는 역사를 하나 세우는 중이니 말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제작 중이다. 

아직도 좁은 골목을 누비는 동네 주유소, 2022ⓒ유광식

여름 뙤약볕에 마음껏 기지개를 펴는 나무, 2022ⓒ김주혜

주안동의 포인트가 되는 시민회관 역 주변으로 나와 보았다. 혹 누가 보면 시민회관 역인데 이름의 주인인 회관은 어디 있느냐 할 것이다. 2000년 사라진 회관(1973~2000)을 두고 지금까지도 기억이 참으로 길구나 싶다. 사실 이곳은 인천시민운동의 성지 같은 곳이다. 너른 땅 주안에 소규모 주택들이 많은 가운데 도시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마중물 역할을 한 번 해보겠다며 총대를 멘 곳이 바로 1구역이다. 옛 주안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를 대규모 의료, 상업, 주택지로 바꾸는 사업인데, 얼마 있으면 준공이라니 착공까진 느려도 건설은 눈 깜짝할 정도로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옆으로는 오래된 경인종합상가가 있다. 얼핏 보아도 오래된 형님뻘 집처럼 커다란 면적에 육중한 점포들, 뒷면 옥상에 2층 공동주택이 네 동이나 올라가 있는 독특함으로 40년 넘는 버팀목이다. 지난 인천의 시대상을 모조리 알려 줄 만도 한 자태이지만 뿔이 났는가 말이 없다. 

올해 준공 예정인 포레나인천미추홀 건물과 눈을 의심케 하는 기와집 한 채, 2022ⓒ유광식

경인종합상가 앞면, 2022ⓒ유광식

경인종합상가 측면 골목에서, 2022ⓒ유광식

비유가 그렇지만 경인종합상가는 1구역에 지어진 ‘포레나인천미추홀’의 원형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경인종합상가는 70년대 말 세워져 마흔을 넘긴 노후 건물이다. 상당한 규모로 일대 저녁을 붉게 물들였을 포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 지난 시절이겠지만 말이다. 상가 밖을 한 바퀴 돌고 미로 같은 내부를 빙빙 돌아본 뒤, 옥상 공동주택도 살며시 올라가 보았다. 고온 다습의 날씨를 적절히 이용이라도 하듯 곳곳에 빨간 고추가 여름 선탠 중이다. 입추도 지났고 이후로는 온 동네가 붉어지겠구나! 맵겠다 싶은 풍경이다. 상가 뒤편은 주안시장이다. 시장의 기능은 도망이 갔는가 싶다. 과거의 영광만 천막 아래 전시된 느낌이다. 시장의 나이만큼 함께 시간을 보낸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만이 장사하고 계시지만 무더운 날씨에 더해 텁텁한 마음 감출 길 없다. 

주안시장을 수 놓은 점포 천막, 2022ⓒ유광식

건강에는 OOO 좋더라~, 2022ⓒ유광식

그 흔한 주안동 패션!, 2022ⓒ유광식

상가 뒤편 옥상은 공동주택이다. DCBA 4개 동이 있는데, 각자의 문 앞에 화분 정원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있으며 고추를 널기에 참 좋아 보이는 마당 아닌 마당이 존재했다. 상가 건너엔 주안현대아파트가 친구 격으로 우뚝 서 있다. 또한 골목마다 주변 업소들의 영향은 아닐까 싶은 정도로 이・미용실이 많았다. 주안초등학교가 이사하는 바람에 문방구와 교습소의 간판은 조금 어색해진 표정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알알이 박힌 집들이 문학산을 바라보며 해바라기한다. 주안이 안 그래도 뜨거운데 도시개발 사업으로 복작복작한 모습이었다. 경인종합상가는 도시개발 11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공동주택 4개 동이 있는 경인종합상가 뒷면 옥상, 2022ⓒ유광식

미용 장인들이 모인 골목 사거리 , 2022ⓒ유광식

주안현대아파트 아케이드(나는 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요?), 2022ⓒ유광식

한 곳이 중심을 잡으면 주변으로 파생되는 장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생의 풍경인 셈인데, 지금의 시대는 그 역할을 빌딩 하나가 전부 해결한다. 기존의 평면형 조성이 현재의 수직형 상생으로 변화되었다고나 할까. 각각 장단점이 있고 시민들의 선호가 다르기에 뭐라 할 수 없는 흐름이겠다. 그래도 높이 2m도 안 되는 인간인데, 그 시야를 빈틈없이 메꾸는 주택 박스의 조성은 곱지 않다. 창작이 틈에서 이뤄지듯, 빈틈없는 사람보단 차라리 빈틈 보이는 사람에게 정감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남아 있는 상가 간판을 보며 과거의 주안을 그려볼 수 있어 즐거웠던 건 사실이다. ‘빵이가득한집’에서 부푼 빵을 사고 근처 ‘연정갤러리’에서 열 식히며 잠시 동네를 곱씹어 보았다. 지금 바라본 풍경을 전부는 아니어도 되살리지 못할 시대가 온다면 슬플 것이다.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주변 분위기를 받들고 증언해 주는 경인종합상가와 주안시장을 거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단팥빵 여름의 맛이 아닐까. 

골목의 간판 모음(시대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2022ⓒ유광식

주안시장의 떡집(방아도 잠자는 저녁 시간), 2022ⓒ김주혜
by 유광식 | 2022/08/10 13:15 | △ ARTicle | 트랙백 |
인천유람일기(85) 정겨운 우리들의 집, 만수동
정겨운 우리들의 집, 만수동



만수2동 만수시장 입구, 2022ⓒ유광식

무더위와 휴가, 들뜬 열기가 상상되는 8월이 한 움큼이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내 세상은 고요하다.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은 많아도 쉽게 마음 열고 다니기에는 주춤하게 된다. 지친 심신을 달래려 맛있는 옥수수 알을 세어가며 지내는 일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소나기가 내렸다가 구름이 지나가고, 볕이 들고, 다시 저녁이 되어 뉴스를 본다. 반복되는 파도에 바다는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렇지 못한 마음은 물 건너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거리감만 늘어난 채 살아가게 된다. 덥다는 이야기다. 

시장으로 통하는 단비 같은 골목, 2022ⓒ유광식

시장을 본 후 돌아가는 주민, 2022ⓒ유광식

과거 하이웨이 주유소가 있던 곳으로 기억하는 만수동을 찾았다. 지금은 주유소 아래쪽으로 만수역이 생겨서인지 걸어서 오가는 모습이 많다. 주공단지 건너 만수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여느 시장과는 다른 정겨운 모습이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시장에 천장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장마다 캐노피 시설이 지원되어 설치되었지만, 만수시장의 지붕은 상인분들이 내놓은 오색 파라솔과 천막이 대신하고 있었다. 볕이 잘 들어오니 지금 한창인 채소와 과일의 빛깔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야트막한 경사길 양편으로 각자의 주력 품목을 내어놓고 오가는 손님들의 시선을 끈다. 시장을 보면 동네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 만수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가 있었다. 

만수시장(파라솔이 여름을 맞고 있다), 2022ⓒ김주혜

시장 내 어느 상점(상품카드 사이로 부탄가스가 이채롭다), 2022ⓒ김주혜

시장 입구에는 보통내기가 아닌 듯한 만수종합쇼핑 건물이 있다. 겉모습만 보아도 웅장한 규모지만, 낡은 시간이 묻어 있고 내부도 오래전의 명성만 말해줄 뿐 군데군데 위태롭다. 아마도 이 근방 최대의 상권이었을 것이다. 직선 형태의 시장에 방사형으로 나있는 골목들을 걷는다. 오래된 간판이 많아서 마주칠 때마다 정겨운 기분이 든다. 주민들의 사랑방처럼 이용되는 작은 식당들이 많았고, 아빠와 함께 시장에 나선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에게 올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아직은 아빠, 엄마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만수시장 입구(입간판 시설), 2022ⓒ유광식

시장 뒷골목 거리(숨겨진 식당과 미래가 있다), 2022ⓒ유광식

만수시장 주변 간판 모음, 2022ⓒ유광식

만수2동 지역은 향촌지구로 불리었다. 지금은 상당수의 지역이 철거된 뒤 아파트가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도 있었던 뼈아픈 장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과거 동사무소 건물은 남동구 도시관리공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편 인근에는 수많은 민주화·노동운동가를 탄압했던 옛 대공분실 건물도 있는데, 활용 방안을 여태 못 찾고 있다. 숭덕여중고와 동인천고를 지나 조금 더 가니 나지막한 높이의 집들이 나타났다. 만부마을이다. 7・80년대 도시개발로 인한 철거민들의 이주 장소가 된 곳이다. 누울 자리 하나 안전하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만수산 아래로 졸졸 흐르다 마른 것도 같다. 알고 보면 산 아래 그늘진 장소가 많다.

한국공영아파트 외벽화, 2022ⓒ유광식

만수신동아아파트 앞 마을버스 정류장, 2022ⓒ유광식

만부마을의 단층집(하얀 고양이가 경비를 서고 있다), 2022ⓒ유광식

여전히 남아 있는 주택들은 오래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정비 받은 모양이다. 산 중턱의 마을이라 소외될 수도 있었지만 비교적 잘 관리되는 인상을 받았다. 정돈된 골목과 주차시설, 정원, 매끈한 페인트칠 등이 지금의 생활을 다독이고 있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택배 차량의 뒷모습이 아슬아슬했지만 끄떡없었다. 간간이 낯선 이를 안내하는 고양이도 있고 평상에서 강아지와 함께 여름을 나고 계신 어르신 부부, 동네 카페를 찾은 젊은이들도 보였다. 만수동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너나 할 것 없이 산 아래 다정한 마을에서 함께 장수하기에 딱 어울리는 곳이다. 

마을의 꼭대기에 위치한 만부경로당(리조트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2022ⓒ유광식

빈 터를 활용해 조성한 만부마을 정원(놀러와~), 2022ⓒ유광식

동네를 거니는데 통행을 위한 길목이 좁긴 했다. 인도도 어떤 곳은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차차 개선되리라 믿는다. 향촌지구라는 말에는 고향, 마을이라는 의미가 심어져 있다. 어디에나 스스로 고향을 짓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이주도 본능이고 정착도 본능일진대 그 파도가 거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장소보다도 메밀 국숫집이 눈에 많이 띄던 만수동! 더운 여름 시원한 개천과 당도 높은 과일이 기다리던 내 고향처럼, 다정다감한 마음으로 첨벙첨벙 헤엄치고 싶은 마을로 피어나길 바란다.        

창 너머 요상한 물품들, 2022ⓒ유광식

서산 너머로 기우는 태양과 마을 정원의 코스모스, 2022ⓒ유광식
by 유광식 | 2022/08/01 05:57 | △ ARTicle | 트랙백 |
인천유람일기(84) 잉어가 그려낸 삶의 역사, 장기동
잉어가 그려낸 삶의 역사, 장기동



3・1만세운동 기념탑 광장과 아이들, 2022ⓒ유광식

여름날이지만 어느 찰나에 진짜 여름 같단 상황이 있다. 바깥에서는 땡볕과 끈적이는 땀 때문에 서두르며 걷지도 못한다. 덥다면 시원한 물가를 찾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국내외적 영향으로 솟구친 소비자 물가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다. 살겠다고 올린 금액이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가 되어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퍽퍽한 세상살이를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옥상에서 바다에서 다리 위에서 몸을 던져야만 했던 우리 주변의 사건에 숙연함만 떠오른다. 힘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서민들의 삶이 가혹한 법과 제도를 얼마나 버텨낼지 모르겠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사실을 익히고 즐기는 것이 어찌 좋지 않겠냐마는 윗집 입주자의 후렴구 소리에 온 신경을 쏟기에도 바쁜 일상이다.

장기동 골목 모습, 2022ⓒ유광식

빨간밥차와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건물, 2022ⓒ유광식

인근의 계양구 장기동을 찾아가 보았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동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다양하다. 본래 말은 ‘장이 선다’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전국 곳곳에 장이 서니 중복되는 장소가 꽤 있을 것 같다. 대구시에도 있고 근처 김포시에도 장기동이 있었다. 김포는 그리 멀지 않아 택시를 탄다면 구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장기동은 인근 한강과 굴포천의 하류 지역으로, 잉어와 같은 물고기가 많이 서식했다. 그래서인지 잉어가 많이 거래된 모양이다. 장터 이름도 ‘황어장’이었다. 그래서인지 계양대교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황어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바로 옆 경인운하에서 헤엄치다 걸려 잡힌 녀석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기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극기, 2022ⓒ유광식

계양대교 아래 대형 황어상, 2022ⓒ유광식

황어장은 시장의 기능만 담당했던 곳이 아니었다. 과거 기미년 3월 24일 장날에 만세운동이 일어나 인근 김포와 인천 등 강서지역의 만세운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 시위자였던 이은선이 일본 순사에 의해 순국하였기에 더더욱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지사의 순국 장소라고 추정되는 곳에는 이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2005년 광복절을 기념하여 옛 계양1동 우체국 건물 앞에 세워졌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황어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과 역사문화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탑 앞은 어른들 못지않게 아이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 탑에서 먼 훗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아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새로 지은 역사문화센터가 있었으나, 기존 전시관 건물과 조경 보수 때문인지 아직은 내부를 관람할 수 없었다. 역사문화센터는 기념전시관과 지역 커뮤니티 공간, 청소년 동아리방 등 구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고 하니 다음 달 광복절이 어느 해보다 더욱 뜻깊을 것 같다. 

3・1만세운동 역사문화센터(2022.4.7. 개관), 2022ⓒ유광식

옛 계양1동 우체국 앞에 세운 이은선 지사 순국지 표석, 2022ⓒ유광식

농경지와 계양대교의 웅장함을 따라 아라뱃길로 방향을 틀었다. 요새는 보행통로뿐만 아니라 자전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다. 높디높은 대교 옆으로는 비스듬히 오르막길이 있어 천천히 걸어본다. 오르다 보면 꽤 높아서 아찔하기도 하다. 계양대교 상단에 오르니 보행승강기를 이용해서 자전거와 함께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다만 한 승강기 1기가 작동되지 않아(하강은 계단으로?) 유리 온실 같은 승강기탑 속의 계단을 뱅뱅 돌며 지상까지 걸어 내려가야 했다. 너무 무더운 날씨라서 승강기가 더위를 먹었을까? 시설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지상으로 내려오니 고장난 승강기 따위는 바로 잊혔다. 출입구로 나오니 귤현나루 광장에는 거대한 황어 한 마리가 포획을 아쉬워하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황어상 옆에는 아라천 디자인큐브라는 컨테이너형 복합문화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시설은 좋아 보이나 활용 면에서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 일대의 활성화를 위한 관계 기관의 노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계양대교에서 바라본 귤현나루 일대, 2022ⓒ유광식

아라천 디자인큐브 복합문화센터, 2022ⓒ유광식

귤현나루를 지나는 자전거 행렬이 있고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챙겨 온 간식을 먹는 이도 있고 라디오 노래를 틀어놓거나 돗자리에서 꿀잠을 청하는 사람 등 꽤 많은 시민들이 쾌적한 거리를 유지하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계양대교 하부에는 숨겨진 보행통로가 있다. 흔들다리 마냥 차량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은 출렁거리며 스릴을 느낄 수 있었던 보행통로에서 멀리 장기동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대신 자동차 소음은 감내해야 한다. 계양대교는 귤현동과 장기동, 검단신도시를 연결해 주는 북부권의 중요한 연결다리이다.

계양대교 보행통로에서 바라본 장기동 방향, 2022ⓒ유광식

계양대교 보행통로에서 바라본 귤현동 방향, 2022ⓒ유광식

장기동은 인천의 북동쪽 하천 하류 구역인지라 물이 풍부하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살고 농업이 발달하며 시장이 서고 다양한 교류가 많았을 것이다. 인천 지역의 중요한 길목인 셈이다. 태극기가 게양된 장기동 골목에 서서 지난 역사를 보듬고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조금씩 거주의 의미가 부푸는 걸 보면 물 건너 계양산의 키가 그렇게 커진 건 아닐까?

계양대교를 오르며(중간에 계양역과 우측으로 계양산이 보인다), 2022ⓒ김주혜
by 유광식 | 2022/07/18 03:55 | △ ARTicle | 트랙백 |
인천유람일기(83) 바다와 숲이 한가롭게 만나는 곳, 송산숲에서
바다와 숲이 한가롭게 만나는 곳, 송산숲에서



송산숲 입구(중구청소년수련관 방향), 2022ⓒ유광식

짧아진 소매에 반바지 차림이 일상이 된 것을 보니 진짜 여름인가 싶다. 안 그래도 될 텐데도 올해 무더위는 보름이나 일찍 도착했다고 한다. 외부 통제가 제법 풀어지면서 외출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동안 코로나19로 리스트에만 있던 장소를 해외로 국내로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장마 기간이니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복잡한 마음을 식혀보려고 가까운 영종도로 향했다. 남쪽의 인천대교를 건널 일은 드물고, 북쪽의 영종대교를 건너는 마음이 꼭 소풍 나온 아이처럼 신난다. 그런데 차량은 많고 뻘 매립은 안타깝게만 보인다. 세어도가 보이는 풍경을 뒤로 한 채 백운산 남쪽(운남동) 송산으로 향했다. 

특색 있게 개화하는 어느 나무, 2022ⓒ유광식

그 많던 제비로 한 때 ‘자연도’라 불리던 영종도. 영종도 남동쪽에 위치한 송산(松山, 88.9m)은 송산숲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바다와 맞닿은 높지 않은 산으로, 인근 하늘도시 주민들의 동네 앞산이자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책 장소이다. 송산은 씨사이드파크 공원의 중간 지점에 거북이 등처럼 봉긋하게 솟은 모습으로, 앞에는 드넓은 남단갯벌이 펼쳐지고 인천대교가 저 멀리 보인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레일바이크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었다. 이용객이 많아서인지 레일바이크가 정말 기차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일과 방조제 사이에는 건널목이 있고 안전바가 일정 시간마다 오르락내리락했다. 철도건널목을 건너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는데, 아마도 레일 특유의 소리 때문인지 마치 전철역에 와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볕이 너무 뜨거운데 어부로 보이는 주민 몇 분이 방파제에 앉아 김밥을 드시며 갯벌 노동을 마무리하고 계셨다. 낮의 볕이 강렬해 서둘러 그늘을 찾아 송산으로 올라갔다.

씨사이드파크, 2022ⓒ유광식

방파제 위 어부와 레일 위 관광객, 2022ⓒ김주혜

공동 어업을 위해 사용되는 궤도 운반 기계, 2022ⓒ김주혜

송산숲은 말 그대로 소나무가 많다. 능선길이 잘 정돈되어 있고 필요한 경사지 빼고는 데크가 없이 땅 위에 멍석이 깔려있어 걷는 데 무리가 없다. 소나무가 많아서인지 송홧가루가 참나무에 내려앉은 모습이 흔하다. 여러 입구 중 하나를 택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걸으면 되는데, 일단 숲에 들어서면 외부 소리가 차단되는 노이즈 캔슬링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산새 소리가 너무도 맑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마치 “나를 따라오시게나”라며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새소리가 전혀 거슬리지 않고 집중하게 되었다.  

송산숲 헬기장(H), 2022ⓒ유광식

마음 편히 자란 참나무, 2022ⓒ김주혜

잎에 떨어진 송홧가루, 2022ⓒ유광식

팔각정자(송산 정상), 2022ⓒ유광식

송산에는 올해 개관해 7월 1일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간 중구청소년수련관이 있고 송산배수지도 있다. 아담한 헬기장도 있다. 북서 방향의 백운산(255.5m)은 듬직하다. 오르락내리락 가뿐히 리듬을 타며 걷다 보니 서쪽 송산정에 도착했다. 망루에 올라 갯벌을 바라보며 바다 위 하늘의 부피를 가늠해보았다. 무엇보다도 잔잔히 불어와 안기는 해풍의 맛이 일품이었다. 자유롭게 자라난 모습의 참나무가 흔들거리며 심신에 안정을 주었다. 어느 반려 강아지는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하고 갔다. 높은 곳에서 보니 빠른 속도로 밀물이 들어오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땀을 조금 식힌 후 다시 레일바이크 반환점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카라반 캠핑장도 인기인지 많은 가족이 체크인 후 캠핑을 즐기는 중이었다. 조용한 줄만 알았던 송산숲 주변이 살랑살랑 북적이고 있었고 공간마다 색채가 뚜렷했다. 

송산정, 2022ⓒ유광식

송산정 앞 남단갯벌, 2022ⓒ유광식

세상은 늘 반복 같은 새로움이다. 이곳에서 다시 저곳으로 돌아가야 하며, 좋고 나쁜 기분은 계속 회전하기 마련이다. 레일바이크가 한 바퀴 회전하여 방향을 바꿔 다시 돌아간다. 친구들로 보이는 나이 든 아주머니 네 분이 함께 민요를 부르며 레일바이크 페달 위 즐거운 한때를 기록한다. 해변 산책로 화단에는 해당화가 가로등을 대신해 옹기종기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바다에 빠지겠다는 마음이었건만, 숲에 빠진 마음이 나쁘지 않다.    

으~악!, 2022ⓒ유광식

공원 산책로에 심어진 해당화, 2022ⓒ유광식
by 유광식 | 2022/07/03 00:43 | △ ARTicle | 트랙백 |
인천유람일기(82) 꺼지지 않을 호국의 불빛,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꺼지지 않을 호국의 불빛,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자유수호의탑 뒤에서 바라본 모습, 2022ⓒ유광식

야외전시장에서 팔미도(보이지는 않음)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2022ⓒ유광식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농산물을 바라보면 달력 없이도 절기를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진열대에는 참외와 수박이 기지개를 켜는 가운데, 살구와 산딸기, 앵두, 보리수 등이 주변으로 주렁주렁 열렸다. 살구나무에 대한 기억이 깊어 살구 한 팩을 꼭 끌어안고 와서 먹는다. 제철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만남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현시대는 하우스 농사가 주류인지라 제철을 넘어 사시사철이 된 작물이 많아졌다. 또한 품종 개량으로 같은 작물이라도 특이한 모양새가 많다. 소비자는 노지와 하우스용이라는 두 가지 재배 형태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6월은 1년의 가운데를 넘는 고갯마루다. 절기상 그렇기도 하거니와 이사와 문병도 자제한다는 세시 풍속적 금기도 전해져 온다. 그만큼 전환점을 맞았을 때는 조심하고 볼 이야기란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로 한국전쟁의 아픔을 되새기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조심스럽게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연수구 청량로 138, 이하 기념관)을 둘러보며 때를 맞이했다. 

야외전시장에서 바라본 청량산(기념 사진을 남기는 관람객들), 2022ⓒ유광식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장비와 참전국 깃발, 2022ⓒ유광식

연수구 청량산 기슭에 위치한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서해를 바라보며 자유수호의 깊은 뜻을 전하고 있다. 기념관의 외부 모습은 시선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옆 인천시립박물관에 올 때마다 육중한 회색 돌들로 견고히 쌓아 올린 벽의 이미지가 강해 힐끗 쳐다보곤 했다. 짧은 동선의 전시실을 보고 나오면 외부 경치가 좀 더 강하게 밀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역사를 가볍게 보기야 하겠느냐마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오래된 이야기라 생각하면서도 내심 생생함을 기대하게도 되는데, 자동차 창고로 전락한 송도유원지의 모습처럼 군데군데 세월의 때와 경직을 본다. 

기념관을 찾은 시민들, 2022ⓒ유광식

1층 입구면(좌측에는 종자를 공수해 키운 맥아더 나무가 자란다), 2022ⓒ유광식

기념관의 내부 전시실보다는 외부 산책로를 따라 당시 사용된 무기들과 항전의 증거물을 둘러보는 것이 마음을 되새기는데 좀 더 도움이 된다. 어렸을 때 견학 목적으로 방문했을 분들은 감회가 새로울 것이고 말이다. 실제로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비행기나 차량, 미사일, 탱크 등이 당시의 참상을 환기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주 거대한 프라모델 같기도 했다. 6월은 조금씩 더워지는 시기이기도 한데 빛이 강하기도 해 기념관 전체를 차양으로 덮으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한편 외장재의 느낌 때문이겠지만 혹여 의도된 것이라도 육중함을 떨쳐낼 수 없음은 그저 무겁기만 하다.

전시관 내부, 2022ⓒ유광식

전시관의 당시 유물들, 2022ⓒ유광식

작년에는 기념관 외부의 전두환 현판·헌시비를 뜯어냈다고 한다. 그 전엔 기념식수 표지석도 걷어 냈다. 시대에 따라 미묘한 변화가 함께 상륙한다. 전시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미 알려진 내용이겠지만 전쟁 중에 개최했던 시화전 작품이라든지 어머니께 미처 부치지 못한 병사의 편지를 볼 땐 나도 모르게 숙연함이 올라왔다. 그리고 격동의 시대를 맞닥뜨려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며 화가 나기도 했다. 바랄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참상의 기록이 보태지지 않을 상황이겠다. 지금도 전쟁의 늪에 빠져있는 세계 많은 나라들의 평화를 빌 따름이다. 

시화전 작품 중 하나, 2022ⓒ유광식

자유수호의탑, 2022ⓒ유광식

기념관 주변으로 총 3개의 주차장이 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륙 시에 지칭했던 레드, 블루, 그린 비치를 형상화한 건 아닌지 문득 생각이 스쳤다. 시민들의 접근이 다양한 루트에서 이뤄지며 역사와 대면할 수 있길 바란다. 인천의 이야기꾼인 시립박물관으로부터 흘러온 걸음이 21세기 격동의 고갯마루인 현대의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거쳤다. 몇 년 후 시립박물관이 건넛마을로 이사를 하면 상륙작전기념관이 다소 심심하겠다. 준비하고 있겠지만 사례 중심의 특별 전시도 좋겠고 야외 쉼터에서의 도시락 식사도 소풍 못지않아질 노릇이다.  

상륙을 형상화한 야외 조형물, 2022ⓒ김주혜 

소련제 미그 전투기 킬러라고 불리던 F-86D 전투기,2022ⓒ김주혜

돌계단과 경사로를 걷다 보니 쉴 곳을 찾게 된다. 외부 교육장이나 비탈면에 위치한 벤치들이 견학하러 온 학생들에게 주로 이용된 곳이겠구나 싶었다. 그 위로 매점과 카페(화장실 1F) 시설이 있지만 휴점 상태다. 뻔한 예상이지만 코로나 여파일 것이다. 시립박물관 옆 노상 토스트 가게는 성황이었지만 말이다.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휴게실은 작가 공간(별장)으로 이용하고 인근 연수 예술창작공간인 ‘아트플러그’와 연계해도 좋겠다. 기념관 외부 계단 위에서 친구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이고 탑 아래에서 먼바다를 응시하는 어르신도 계셨다. 서해가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사과(태양)를 삼키려던 시간에 기념관의 표면엔 윤기가 흐른다. 그저 어렵고 피하고 싶은 잿빛 사건처럼 여겨질지언정 기념관의 존재를 호국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 삶과 사회가 가고자 하는 그림을 스케치해볼 수 있는 지렛대로 여긴다면 뜻깊은 의미일 터이다. 백일장 시즌이기도 한 6월의 제철 고민, 제철 역사가 빛나 보이는 이유일 터이다.   

야외 휴게실/매점 및 카페 건물(현재 1층 화장실만 이용 가능), 2022ⓒ유광식

작전의 중요한 신호탄이었던 팔미도 등대, 2022ⓒ유광식
by 유광식 | 2022/06/20 00:25 | △ ARTicle | 트랙백 |
220616_OOO 없이 내빼기
작품을 내린다.
도중에 도서관 미화 아주머니분들로 보이는 분들께서
힐끔 "삼층집 지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무너졌네!"라며 아쉬워한다.
기간이 짧았던 모양이다. 2주가 작가에게 짧지는 않지만, 또 다른 부분이다.
정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방 무너진다는 말씀에
가슴 한쪽이 아팠다. 우리 주변의 실상이 그래서 더 그랬다.
서구의 모습이 마냥 아름다울 순 없지만 진한 기억의 형상으로 
많은 분의 마음 안에 따뜻하게 피워지면 좋겠다. 
전시 개최의 이유이기도 했다.  

by 유광식 | 2022/06/17 11:30 | 2020 삼층집 | 트랙백 |
인터넷 익스플로러 서비스 종료. 6.15~

시절에 박힌 가시 같은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 나와 안녕! 하고 사라진다. 
인사하고 떠나는 길에 잠시 동행하고 싶어진다.
자라는 건지 꺼지는 건지 모를 시간의 출몰이 아련하다.  
by 유광식 | 2022/06/10 15:12 | 2014 日記 | 트랙백 | 덧글(2) |
인천유람일기(81) 물길마다 반짝이는 볕을 따라서, 동양동
물길마다 반짝이는 볕을 따라서, 동양동 



이선봉 묘역의 문인석 중 하나, 2022ⓒ유광식

생활물가지수가 5%를 넘었다고 한다. 당장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과는 달리 이상하게 치솟은 가격에 놀라고 넉넉지 않은 지갑에 당황하게 된다. 누군가는 잘 지내겠으나 걱정으로 하루 한 끼를 먹는 서민들의 삶을 떠올리면 물가에 내놓은 아이의 심정처럼 불안해진다.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지방선거의 영향이 6월 한 달을 잠식할 것 같다. 코로나 감염 공포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공포심을 유발하는 여러 정보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각자의 노력이 중요한 때이다. 매일 해는 똑같이 뜨는데도 무언가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 많다. 오늘 하루의 따뜻한 볕을 바라게 되는 시간이다. 인천의 동쪽, 동양동 양지바른 땅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향했다. 

둥그재산에서 바라본 계양산, 2022ⓒ유광식

산책로에서 만나는 아카시아와 찔레, 2022ⓒ유광식

계양구의 북동쪽에 있는 동양동은 몇 년 전 3기 신도시 개발지구로 지정되며 뜨거워진 곳이다. 이름의 뜻이 동쪽의 볕이 자리한 공간이어서인지 따뜻한 느낌으로 묘사된다. 동양동은 수도권 제1순환도로와 김포공항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서울, 부천과의 경계인 굴포천 하류와 마을을 관통하는 서부간선수로가 동양동의 버드나무를 울창하게 키운다. 드넓은 농지가 인상적인 마을에는 그들만의 생활이 있었다. 동네 동산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기 위해 둥그재산으로 먼저 향했다. 한걸음에 올라 인근 장소를 살펴볼 수 있는 둥그재산에는 조선 성종의 12남 무산군의 손자 이선봉(李善鳳, 1578∼1660) 일가의 묘역이 있다. 3기의 묘 주인은 부인과 아들, 며느리이다. 주변을 지키는 문인석의 표정이 각기 다르지만 온화한 미소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이선봉 일가 묘역, 2022ⓒ유광식

둥그재산 산책로와 공원 꽃밭, 2022ⓒ유광식

둥그재산에는 산 둘레를 따라 둥글게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었고 까치와 제비꽃, 칡넝쿨이 많았다. 학교를 마친 아이와 함께 산에 오른 엄마, 강아지와 산책중인 주민,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저씨가 공원의 나른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한편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까만 매직펜으로 데크에 그려진 나무 그림을 자주 보게 되었다. 군데군데 나무를 그려두었다. 아니 몰래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근린공원에서 내려와 서녘공원을 지나 서부간선수로로 향했다. 주택가 중심에 위치하는 서녘공원은 만남의 장소라도 되는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마을의 터미널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바로 옆 뻥튀기 트럭에서는 고소한 향이 퍼지며 행인의 입맛을 낚고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에 나선 주민, 2022ⓒ유광식

까만 매직펜으로 벤치에 그려 놓은 나무 그림, 2022ⓒ유광식

서녘공원의 한가로운 오후 풍경, 2022ⓒ김주혜

계양3동행정복지센터 앞쪽으로는 서부간선수로가 맑은 물빛으로 흐른다. 농업용수 공급이 주된 목적으로, 부평에서부터 이어져온 모습이다. 부평 쪽은 악취 문제로 매해 시끄러운 모양인 것에 비해 동양동 구간은 정화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수량도 많고 잔잔한 흐름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마침 흑오리 한 마리가 잠영 솜씨를 뽐내며 간다. 수로에는 버드나무도 심겨 있었고 주민의 참여로 심어진 꽃과 나무들이 많았다. 강 하나를 품고 사는 마을이라 생각하니 부러움도 살짝 생긴다.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 엄마들의 휴식, 종종 보이는 경작지 등 물길 따라 생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그 생기가 모이니 뜨거웠다.     

서부간선수로(도로 아님), 2022ⓒ유광식

수로 가까이 조성된 산책로, 2022ⓒ유광식

주민의 참여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가는 수로, 2022ⓒ김주혜

마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유히 흐르는 수로 덕분인지 정적이면서도 비옥함이 가득했다. 해가 길어져 저녁 시간이 되어도 볕은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칼칼한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곁들이기 좋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미 그러고들 사는 것인지 가족으로 보이는 몇몇 팀이 수로면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서 평온한 하루에 감사하고 내일의 마음에 물을 주어야 할 때란 걸 안다. 도서관의 저녁도 부풀 것이고 천변의 식물들도 한껏 수분을 끌어 올릴 것이다. 볕 좋은 동양동은 처음이라 새로움이 컸으나 금방 친근해졌다. 

동양동의 서고인 동양도서관, 2022ⓒ유광식

간혹 세상 물정 모르고 사는 공간이 있다는 생각이다. 복잡하고 빠른 세상에 적응하기에도 부족한데 느긋한 시간이 흐르는 곳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나날이 그리워질 정도로 어찌 급변할지 모르겠다. 매직펜으로 나무를 그리는 분의 간절함이 그런 게 아닐까. 신통한 마법(magic)을 부려 자연의 또 다른 이름, 동양동이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만에 풍부한 수량의 맥을 짚어서인지 기분이 찰랑찰랑하다. 볕 바라기 좋은 장소였다.

계양산과 함께 여름을 기다리는 과정, 2022ⓒ유광식
by 유광식 | 2022/06/05 23:04 | △ ARTicle | 트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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