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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김민아] 구하라와 설리, 그리고 U2
경향신문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입력 : 2019.12.09 21:00 


“이 글에선 당신의 이름 석 자는커녕 이니셜조차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사건이 ‘최○○ 동영상 협박 의혹 사건’으로 명명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벤지포르노범들 강력 징역해주세요’라는 청원엔 21만8000여명(2018년 10월8일 현재)이 동참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최종범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입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지지한 수십만명은 미약했습니다. 악의를 품고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들, 세상의 질서를 바꿔놓을 ‘권위’를 가진 이들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구하라. 당신이 떠난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을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배우 강지환씨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입니다. 학생 28명을 49차례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교사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징역 형량은 2년에서 1년6월로 줄었습니다. 파면당한 점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낯설지 않은 일들일 겁니다. 서울중앙지법 오덕식 부장판사는 지난 8월 최종범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협박·강요·상해·재물손괴 등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당신의 명시적 동의 없이 촬영한 게 맞다면서도 “피해자 의사에 반한 것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사정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부부강간죄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이런 법리를 내세우다니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기준을 재정비해 달라’는 청원이 진행 중입니다. 청원인 수가 답변 요건 2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공감합니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형을 깎아주는 근거가 돼선 안됩니다. 하지만 양형기준만 개정되면 성범죄 수사·재판이 달라질까요. 2012~2017년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받은 피고인중 실형 비율은 8.7%뿐입니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 불법촬영을 직접적 가해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볍게 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죽음을 떠올릴 만큼 공포를 겪지만 법원과 검경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수사·재판 기관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최근 한 어린이집에서 5세 남아가 동갑의 여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모습”(12월2일)이라고 했다가 사과했습니다. 사흘 만에 또 “성폭력이란 용어는 부적절하다”(12월5일)고 했습니다. 5세 아동을 형사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폭력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5세 남아가 동갑 남아를 때려 다치게 했더라도 박 장관이 이렇게 말했을까요.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가해 아동의 행동은 정상적 발달과정의 연장선에서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핵심은 사회 전반의 후진적 젠더감수성입니다.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기보다 성적 대상·객체·상품으로 바라보는 구조입니다. 남성의 성적 욕망에는 관대하고, 여성의 아픔에 대해선 무감각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아일랜드 출신 록밴드 U2는 지난 8일 내한공연에서 ‘울트라바이올렛’을 부르며 당신의 친구 고 최진리(설리)씨를 추모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메시지도 띄웠습니다. 비슷한 시간 ‘국가기간방송’ KBS에선 중단됐던 <1박2일>의 시즌4를 열었습니다. 정준영씨가 빠졌으니 괜찮은 걸까요? 

힘없는 존재들의 정체성은 한데 뭉뚱그려져 ‘범주화’됩니다. 여성, 청년,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유색인종이 그렇습니다. ‘구하라’의 자리는 없고 ‘여자 아이돌’의 자리만 남지요. 힘센 존재들의 정체성은 ‘개별화’됩니다. 남성, 중장년, 비장애인, 이성애자, 코카서스인종(백인)이 그렇습니다. 죽어서는 격차가 더 커집니다. 역사의 기록은 강자의 몫이니까요. 한국 역사를 바꾼 여성들의 대열에 최진리씨를 함께 세우며 기억한 U2에 고마워하는 이유입니다. 

저도 당신과 당신의 친구를 새롭게 기억하려 합니다. 당신은 생전에 ‘정준영 단톡방 사건’ 취재에 도움을 주었지요.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가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최진리씨는 취약계층 여성들을 위해 유기농 생리대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떠난 뒤 5억원 상당 생리대가 기부됐습니다. ‘당신들’이 ‘악플로 고통받다 떠난 젊은 여성들’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하라와 설리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행동했던, 용기 있고 아름다운 여성들로 기록돼야 합니다.
by 유광식 | 2019/12/09 22:48 | • You word | 트랙백 |
[대장암]인스턴트 한 끼가 대수냐..10년 후 대장암 걸린다
NEWS1 
음상준 기자 sj@news1.kr


체중 줄고 빈혈·소화불량 잦으면 대장내시경 필수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채소 대신 육류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대장암이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대장암은 맹장과 결장, 직장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인구 고령화와 서구화된 식습관의 영향으로 국내에도 대장암에 걸리는 환자가 많아지는 추세다. 대장암은 직장보다는 결장에 생기는 경우가 더 많으며, 환자 10명 중 9명이 50세 이상 중장년층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2만여명이 대장암을 진단받고 있다. 육류를 즐기고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 여기에 담배까지 피우면 대장암 고위험군으로 봐도 무방하다. 정제된 당분(설탕)을 장기간 과다 섭취하는 것도 대장암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이다. 하루 대부분을 앉아서 일하고 업무 스트레스를 운동 대신 술과 담배로 푸는 습관도 당장 고쳐야 한다. 황대용 건국대병원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암 환자가 건강한 일반인에 비해 육체 활동량이 매우 적은 특징을 보인다"며 "섬유소가 많은 채소를 많이 먹고 자주 몸을 움직여야 대장암에 걸릴 위험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중장년층 환자가 많은 대장암은 나이가 10년씩 늘면 발병률도 2배로 치솟는다. 가족력이 있거나, 내시경 검사에서 용종(폴립)을 발견한 경우,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질환, 난소암과 자궁내막암, 유방암을 앓았던 사람이라면 대장암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맨눈으로 본 형태학적 대장암은 융기형과 함몰융기형, 함몰침윤형, 미만형으로 구분한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조직학적 분류는 선암과 점액성암, 인환세포암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 유암종과 육종, 피부에 생기는 흑색종도 생길 수 있다. 항문 근처에는 편평상피세포암과 총배설강암, 기저세포암 형태로 발병한다.

건강한 일반인도 빠르면 2년5개월 만에 대장암이 생길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환자는 10년 이상 나쁜 생활습관이 쌓여 대장암이 발병한다. 100% 완치할 수 있는 조기 대장암은 전체 환자의 2~5% 수준에 그친다. 이들 환자도 대장암을 의심해 검사를 받았다기보다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소화불량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대장암이 간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환자들도 종종 발견한다. 반대로 혹이 큰 데도 병 진행 정도가 2기로 진단받는 등 증상이 천차만별이다. 대장은 해부학적으로 오른쪽이 왼쪽에 비해 직경이 크다. 왼쪽 대장은 종양 크기가 3㎝만 돼도 막힌다. 반면 오른쪽 대상에는 종양이 15㎝에 달해도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직장에 종양이 생길 때는 변이 가늘어지거나 대변을 본 뒤에도 시원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를 이급후증으로 부른다. 대변에 피나 코 같은 누런 점액이 섞여 나오는 것도 증상이다. 오른쪽 대장암은 배에 혹이 만져지거나 체중 감소, 빈혈, 소화불량,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문제는 이를 소화장애로 치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조기 대장암은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게 유일한 예방법이다. 배변 습관이 바뀌고 설사와 변비 증상이 잦아지면서 잔변감이 남은 경우, 대변에 선홍색 또는 검은 출혈이 보일 때, 변 굵기가 계속 가늘어질 경우, 복통과 팽만감, 더부룩함 증상이 잦은 경우, 수시로 피곤함을 느끼면 즉시 대장내시경을 받아보는 게 좋다.

황대용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암은 내시경 검사 후 종양이 생긴 조직을 현미경으로 검사한 뒤에야 확진을 받는다"며 "다만 암 조직이 부슬부슬 부서질 때는 진단이 까다로워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장암이 재발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환자는 종양이 작을수록 진단 과정이 복잡해진다"며 "이런 환자는 엑스레이와 혈액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 양전자단층촬영(PET) 등으로 정밀검사를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by 유광식 | 2019/12/07 11:53 | • News Clip | 트랙백 |
인천문화재단, 엉터리·부실 운영 무더기 ‘적발’
인천투데이 장호영 기자 


인천시 감사에서 12건 부적정 행위 지적...처분받아

인천문화재단의 엉터리·부실 운영이 인천시 감사에서 무더기로 적발됐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시가 5일 공개한 ‘2019년 인천문화재단 종합감사 보고서’를 보면, 201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총 12건의 부적정 행위에 대한 지적과 처분을 받았다. 먼저 지난해 문을 연 재단의 인천음악플랫폼이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 재단의 사무실로만 운영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단은 인천 중구 소재 옛 동인천등기소 건물을 25억 원에 매입하고 수선한 뒤 지난해 1월 인천음악플랫폼으로 개관했다.

그런데 건물 매입 과정부터 문제 투성이였다. 재단이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계약 기간까지 지불이 불가하자, 이자를 포함해 분납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인천시의회의 의결과 심의·확정 선행 절차 없이 계약을 체결해 지방재정법과 지방자치법을 위반했다. 시는 “이런 행위가 회계 질서 문란을 초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음악플랫폼을 조성한다는 등의 이유로 4억 원을 들여 건물을 수선했는데, 애초 계획했던 뮤직홀과 음악자료실 등은 전체의 18.5%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재단 청사를 이전해 사무공간으로 사용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뮤직홀은 방음시설과 음향·조명시설도 갖추지 않고 회의실로, 음악자료실은 노조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음악자료실 비치를 위해 사들인 자료들도 노조 사무실에 방치돼있었다.

재단이 조직 개편 사전 절차 이행 없이 팀 전원을 발령을 내는 등 ‘재단의 직제 변경은 이사회의 의결과 시장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는 이사회의 권한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로 인해 재단은 ‘기관 경고’를 받았다. 또한, 2018년 1월 예산 1억8000만 원으로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관 조성(설계 용역) 사업을 추진하며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기간제 노동자를 단독 담당자로 지정해, 성과품 납품 전 대가 지급, 설계용역 결과물의 상충 등 계획성 없는 업무 진행으로 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재단이 기부금 운영 정산을 소홀히 한 사실도 확인됐다. 2017년부터 3년 간 매년 순수기부금 사업으로 1억~1억2500만 원을 편성해놓고 30% 만 집행하거나 아예 집행하지 않았다. 기부금 여유자금을 별도 통장에 관리하지 않고 연이율 0%나 0.1%의 보통예금 통장에 예치하며 수익 관리에 소홀했다. 아울러, 재단은 공사나 물품 구입 관련 입찰 계약 시 선금 지급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부적절한 업무 처리 33건, 지역개발 채권 118만 원을 부적정하게 매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예산 편성과 집행도 엉터리였다. 2016년부터 3년 간 사고 이월 처리해야 할 예산 총 10억여 원을 명시이월로 처리하거나 3년 간 총 9억1300만 원의 잉여금 정산 처리를 잘못했다. 행사운영비 240만 원을 부적정하게 집행하고, 규정도 없이 멋대로 법무법인과 법무·노무 자문 계약 체결을 체결해 매월 30만 원 씩 집행하다 적발됐다. 2016년 재산 실태 조사와 정기재물조사를 진행한 후 3년 동안 한번도 조사를 하지 않고, 공연 지원했던 불용물품을 2년 넘게 방치하거나 물품 수급 관리 계획 규정 자체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재단 시설 일부를 서점 용도로 빌려주면서 재물종합보험을 중복 가입해 불필요한 재정을 지출하게 하고, 자동판매기 사용 수익허가 계약 체결 시 공개입찰 없이 임의로 연장 계약해준 사실도 드러났다.

시는 문화재단에 시정 6건, 주의 3건, 개선 권고 1건 등 행정 상 조치 10건을 처분했다. 또한 재정 상 조치 1건(118만 원, 추징 회수)과 기관 경고도 1건 받았다.
by 유광식 | 2019/12/06 16:43 | • News Clip | 트랙백 |
2019년 푸르게 푸르게
한해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녹색의 시즌이었던 것 같다. 옷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전해지는 것들 또한 녹색이 많았다. 내게 맞는 색깔을 찾았다고 해야 할는지. 이전에는 여느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파란색만 좋아했다. 그래야만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녹 푸른 녹청색이 좋다. 서구에는 녹청자박물관도 있는데 함 견학이라도 가봐야겠다. 여튼 주변에 다 푸른 녹색이 많다. 푸르단 것에는 파란색도 있고 녹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음을 이젠 넌지시 알 것 같다. 내년에도 녹색의 여행이 되면 좋겠다. 한해 열심히 잘 지내 왔다. 푸르른 존재와 함께…….

* 파견사업에 함께 했던 고진이 작가님이 친히 만든 씨드 시리즈 중  하나. 최종 회의 때 4명의 작가분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나는 새싹으로 이것도 녹색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씨앗은 조은성 감독님이 나무는 조경아 작가님, 꽃은 황선화 배우님이..ㅋㅋ
by 유광식 | 2019/12/04 13:30 | 2014 日記 | 트랙백 | 덧글(2) |
[주강현] 독도 강치 씨를 말린 일본의 학살극…다케시마의 증거? 반문명적 범죄다
경향신문 [주강현의 바다, 문명의 서사시]
입력 : 2019.11.30 06:00 


섬과 생태, 반문명의 그늘 : 독도 강치의 경우

오키제도 사람들은 1905년 나카이 요자부로의 어장 허가 취득 이전부터 독도 어장을 누볐다. 1934년 독도에서 생포된 강치.

독도 영유권 주장 진원지 시마네현 
오키섬의 고카이촌 구미 사람들
에도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난폭한 강치 사냥으로 ‘독도 경영’
연약한 섬과 생물 약탈에 반성 없이 
여전히 ‘다케시마 영토론’ 기억뿐

사람들은 바람이 강하게 불고 파도가 부서지는 섬을 무척이나 강인한 곳으로 오인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섬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다. 산호섬을 예로 들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태평양의 수심 수천m에 솟구친 화산섬 주변에 산호가 형성되려면 무한시간대가 요구된다. 자연과 지질의 시간은 척도가 인간의 시간과 전혀 다르다. 그토록 오래된 자연과 지질의 시간조차도 파괴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인류의 해양문명사는 어쩌면 섬과 섬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을 가로지른 대항해시대의 역사가 그러했다. 아메리카로 건너가기 이전에 카나리아제도가 ‘발견’되어 원주민이 학살되고 새로운 종이 이식되었다. 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의 다양한 섬에서도 인간과 언어, 생물과 지질의 역사가 뒤섞이고 멸종되거나 변종과 잡종으로 다시 태어났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경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고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 어머니 대지>를 출간했다. 2015년 교황이 발표한 생태 회칙 ‘찬미 받으소서’의 연장선이다. 교황은 모든 이의 생태적 회심을 촉구하며 지구, 바다, 공기, 동물에게 가해진 해악도 포함시켰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행동에서 연약한 섬은 언제나 원초적 침략의 대상이었다.

■도도와 강치, 그리고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오사카 천왕사 박물관에 박제로 남은 독도강치.

비바람 거세게 몰아치던 1667년 어느 날 새벽, 마지막 ‘도도’가 죽음을 맞이했다. 사라진 새 ‘도도’의 마지막 순간, 그 자신이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도도’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 침입자가 없는 낙원인 모리셔스섬에 살던 도도는 유럽인이 등장하면서 모조리 쓸려갔다. 진화는 수십만년에 걸쳐 일어났지만 종 멸종은 100여년이면 충분했다.

베링탐험대가 베링해에 당도했을 때, 거대한 바다코끼리들이 우위종을 차지하며 엄청나게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탐험이 계속되면서 불과 10여년 만에 많은 바다코끼리들이 사라졌다. 듀공이라고 부르는 바다소는 초식동물이다. 듀공은 들판의 풀을 뜯듯이 바다를 누비고 다녔으나 종 멸종의 리스트에 오른 지 오래다. 

섬에서 사라진 것은 동물만이 아니다. 태즈메이니아섬에서 1만년 넘게 살아온 원주민도 1876년에 완벽히 사라졌다. 원주민의 최후는 지구상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멸종 동물의 최후와 다를 게 없다. 사진으로 남은 원주민의 초상화는 종 멸종이 인간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자행될 수 있음을 입증할 뿐이다. 

한반도의 독도라는 지극히 작은 섬에서 멸종된 강치도 같은 의미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인 사냥꾼이 환동해의 고립된 ‘낙원’으로 몰려왔을 때, 천진난만하고 태평스럽게 살아온 강치도 난폭한 사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처럼 강치 종 멸종은 세계사적 규모로 동시 진행되던 반문명사적 집단학살의 결과다. 생태사관 입장에서 바라본 독도강치의 멸종, 그리고 일본이 종 멸종을 야기했음에도 적반하장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양사의 궤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 반문명사적, 반생태사적 행위의 책임 

그 많던 독도강치는 어디로 갔을까. 수만 마리가 살아가던 환동해 최대의 강치 서식지에서 피비린내 나는 집단학살극이 벌어졌다. 환동해 복판에 솟은 화산섬이라는 생태환경적 특수 조건에서 집단서식해온 강치는 누대의 역사를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나 에도시대 이래로 강치는 그물에 갇히고 총칼에 죽임을 당했다. 가죽이 벗겨지고 기름이 되어 본토로 실려 갔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무차별 강치 사냥으로 결국 독도강치는 멸종을 고했다. 

얼마만큼의 강치가 집단학살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존 역사관을 뛰어넘어 세계관의 전환과 모색이라는 문명사의 맥락에서 볼 때 독도의 강치 종 소멸은 생태사적 범죄다. 일본은 ‘다케시마 영토론’의 주요 근거로 독도강치잡이를 들이댄다.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강치잡이를 통한 독도 경영은 사실상 반문명적인 범죄행위였다. 

독도 문제에서 오로지 영토 문제로만 비분강개할 것이 아니라, 그 섬에서 사라져간 강치의 비극적 떼죽음을 조명하고 반문명사적, 반생태사적 일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이 본격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독도 문제의 거시사 

1712년 출판된 일본의 백과사전 <화한삼재도회>에 기록된 물범과 강치.

강치를 둘러싼 첫 번째 국제적 사건은 이른바 ‘죽도일건’이다. 남의 나라 섬에 왜나라 사람들이 몰려왔다. 1618년 막부는 도해 면허를 발급했고, 일본 돗토리현의 소도시인 요나고 사람들이 죽도(당시 울릉도)와 송도(독도)로 출어했다. 필연적으로 조선 사람의 대응이 시작되었다. 역사에서 ‘죽도일건’이라 명명하는 사건이 그것이다. 안용복이 뛰어들어 일본까지 쫓아가서 국제적으로 대응했으며, 사건의 전모가 조선 조정에도 보고되어 커다란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어업권과 영유권을 차지하려는 조선과 일본 간 외교 교섭이 죽도일건으로 비화한 것이다. 조·일 간의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막부는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여 1696년 1월에 두 가문의 도항을 금지시켰다. 이로써 죽도일건은 끝이 났다. 

강치의 흑역사는 곧 한·일 간 흑역사 
영유권이란 고정적 문제 인식 넘어
일본이 정벌하고 유린한 항해의 흔적 
책임 묻고 생명의 관점으로 성찰을

강치를 둘러싼 두 번째 국제적 사건은 독도 강제 편입과 산업적 강치잡이다. 통감부가 시작된 1905년, 강치잡이 허가를 빌미로 ‘다케시마가 시마네현에 편입’됐다. 1905년 6월에는 ‘다케시마 어렵합자회사’가 설립되어 조직적 어업이 시작되었다. 어렵회사는 1904년부터 1941년까지 강치 1만6500마리를 잡았다. 남획으로 강치가 급속도로 줄어들어 1930년대에 희귀종이 되었다. 1930년대 초반에는 가죽용보다는 동물원과 서커스 구경거리로 포획되었다. 상업적 강치 사냥은 1940년대에 종료되었으나 강치는 이미 사실상 멸종한 상태였다. 일본이 에도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강치를 남획한 결과, 독도강치는 결국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 독도 문제의 미시사: 고카이촌 구미 사람들의 ‘기억 투쟁’  

일본, 특히 독도로 출어하던 시마네현의 오키제도 사람들의 장기지속적인 심성사(心性史), 즉 망탈리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도 문제는 크게 보면 한·일 양국의 ‘거시사’지만, 오키제도 사람들에게는 강치잡이가 어촌과 가문의 ‘미시사’로서 여전히 잠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키 사람들은 1905년 나카이 요자부로의 어장 허가 취득 이전부터 독도 어장으로 나갔다. 오키는 많은 배를 가지고 있어서 대항해가 가능했다. 그 해양력으로 일찍이 독도에 출어했으므로 울릉도와 독도를 넘본 것이다. 최초의 울릉도 입도 일본인도 이들 시마네현 사람이다.

오키섬 최북단에 고카이촌(五箇村)이 있다. 일제는 1905년 독도를 병합해서 오키섬 관할에 두었으며, 1939년에는 오키섬 내에서도 고카이촌으로 편입시켰다. 고카이촌의 북단 마을인 구미(久見)는 독도 문제의 진앙지다. 고카이촌에서도 구미 사람들이 독도로 출어했기 때문이다. 구미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통하여 연도별 강치잡이 총량과 종의 멸종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구미 사람들은 1953년 7월과 그 이듬해에 독도를 비밀리에 침입한 경험을 사진과 기록을 통해 잘 기억하고 있다. 마을에 ‘다케시마 역사관’을 지었으며, 고카이촌 향토관에서는 다양한 독도 아카이브를 소장·전시 중이다. 시마네현 청사에 있는 다케시마 자료관도 독도 자료를 수집·전시 중이다. 이처럼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의 진앙지는 ‘구미-고카이촌-시마네현’으로 이어지는 수미일관된 체계를 지닌다. ‘에도-메이지-다이쇼-쇼와시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는 장기지속적인 그들 나름의 ‘기억 투쟁’에 입각한다. 독도강치를 멸종시킨 반문명사적, 반생태사적 범죄에 관해서는 단 한 줄의 반성도 남기지 않고 있다. 

■ 섬과 생물의 약탈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권한 

오키섬의 고카이촌은 맨홀 뚜껑에도 강치를 새겨두었다.

큰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걷던 도도를 완벽하게 멸종시킨 유럽인은 도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화하고 생태계 소멸의 소중한 사례로 간직하려 한다. 일본인 역시 독도에서의 강치잡이에 관한 기록을 비롯해, 강치 그림책을 펴내고 인형을 만드는 등 여러 방편으로 독도를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의 의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치잡이를 근거로 ‘다케시마 영유권론’만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집단학살을 통한 강치 종 소멸에 대한 반성의 의사는 전혀 없다. 이것은 도도와 강치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치 멸종의 문명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는 강치라는 한 종의 멸종에 관해 슬픈 조종을 울리고, 그로부터 환동해와 독도에서 ‘평화의 바다, 생명의 바다’라는 미래의 꿈을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 부문에서라도 공유해나가야 할 것이다. 뒤늦게나마 강치에 관한 공식적인 관심이 서서히 표명되기 시작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며칠 앞두고 해양수산부는 마침내 독도강치 기념비를 독도에 세웠다. 2019년, 한·일관계는 안갯속으로 접어들었다. 사라져간 강치 이야기가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도 언급되었으며 다시금 사회적 주목을 끄는 중이다. 강치를 기리는 에피타프(기림비)를 세워둘 필요가 있다. 해양 영토를 둘러싼 독도 문제에서 생태사관에 입각한 해양문명사적 성찰이 필요하다. 

사라져간 강치를 오늘날로 다시금 소환하고, 해양문명사적·생태사적 성찰로 다시 기억해내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이처럼, 바다와 문명의 서사시에는 ‘흑역사’의 어두운 그늘도 곳곳에 잠복해 있다. 강치를 둘러싼 흑역사는 바로 오늘날 한·일 간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연약한 섬을 침입해 정벌하고 유린하던 항해의 역사가 남긴 흔적이기도 하다. 


▶필자 주강현 
[주강현의 바다, 문명의 서사시]독도 강치 씨를 말린 일본의 학살극…다케시마의 증거? 반문명적 범죄다
국립해양박물관장, 전 제주대 석좌교수. 해양사, 문화사, 생활사, 민속학, 고고학 등 융·복합적 전방위 연구로 세계를 누벼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 노마드’이자 비교해양문명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해양문명사가. <등대의 세계사> <독도강치 멸종사>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환동해 문명사>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등의 저서가 있다.
by 유광식 | 2019/11/30 10:58 | • You word | 트랙백 |
인천유람일기(18) 시청 뒤 지하철역에서, 인천시청역
시청 뒤 지하철역에서, 인천시청역



인천시청역 1번 출입구, 2016ⓒ유광식

지난 18일 저녁에 눈이 내렸다. 도시라서 반가우면서도 잠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새 수은주가 내려가니 두 뺨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차다. 기분 자체가 달라질 정도로 환절기 감기도 조심해야겠고 말이다. ‘1×2’가 산술적으로 ‘2’가 되지만 인천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인천시청역에서는 ‘2’ 이상의 계산이 나온다. 시청사는 1985년 중구 관동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사를 왔다. 도시는 시청을 중심에 두고 호흡하는 하나의 몸과 같으므로 인천의 ‘중앙’이 바닷가에서 산꼭대기로 굴러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인천시청역은 다른 역과는 다르게 비탈진 면에 있다. 역사 규모가 매우 클 뿐 아니라 북쪽 기슭에 세워진 매머드급 계단형식이다. 가장 낮은 플랫폼 계단을 오르면 개찰구 구역이 나오고 다시 한 계단 오르면 지하광장이 나온다. 여기서 한 계단 더 올라가야 비로소 시청으로 가는 궁둥이(후문 방향)에 닿는다. 옛 질서이기도 하겠지만 시청은 왜 그렇게 높은 곳에 있어야 했는가도 싶다.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은근 주눅이 들게도 되니 석연치 않은 마음만 가중된다. 역을 나서면 시청과 중앙도서관, 시교육청 건물이 나란히 자리한 가운데 건너편에 길다랗게 중앙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어느 장소보다도 ‘중심’, ‘중앙’, ‘기준’ 의 요소를 말해주는 것들이 많다.  

인천광역시청 청사, 2019ⓒ유광식

최근 시청사는 앞뜰을 턴 뒤,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차단과 단절의 지난 풍경 시대를 되뇌다 이제야 중앙의 품을 다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좋다. 날이 추워서 많은 시민을 찾아볼 순 없었으나 탁 트인 공간을 오래된 은행나무 옆에서 지켜보면서 ‘놀라운 시대가 되었네!’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 등대모형을 이용한 프로젝터 장치는 은밀했지만, 육지로 소풍 나온 것처럼 재미나다. 유럽 소도시에서는 시청 결혼식이 종종 있는데 이곳에서도 이와 같은 경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집회도 많아질 것으로 보이니 관련 보안요원들의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나무와 인천광역시청 청사, 2019ⓒ유광식

늦가을 인천愛뜰 은행나무 아래에서, 2019ⓒ유광식

시청역을 중심으로 볕 좋은 구월동과 배후 간석동이 나뉜다. 시청 뒤편의 간석동은 경사지 아래로 ‘뒤’라는 위치 때문인지 그늘진 느낌이다. 시청역 1번 출구로 나가면 곧장 인천예술고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오래된 건물의 증축을 추진하면서 주민 반발, 석면 논란, 이전 요구 등 마찰이 일면서 재학생들이 제대로 된 학습지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예술 분야에 매 어려움이 배달된다. 시청역은 3년 차인 2호선과 만나는 단독 환승역이다. 1호선 역사는 검정 타일 마감과 대리석 기둥의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지만 2호선 라인은 연하늘색 계통의 현대식 마감으로 밝고 가벼운 분위기다. 둘 사이의 공간을 두고 청소년들의 춤 연습을 위한 공간이 자리한다. 음악을 틀고 춤 연습을 하며 땀 흘리는 그들의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자 이곳의 문화가 되었다. 그 옆에서는 격렬하게는 아니지만 민첩한 움직임이 필수인 탁구 게임을 어르신들이 하고 있어 묘한 차이와 어울림을 구성한다.

주택가 안에 숨어 있는 인천예술고등학교(정문), 2018ⓒ유광식

인천시청역 1호선 개찰구로 내려가는 계단 앞, 2019ⓒ유광식

시청역 내부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가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유수의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설치하여 이해와 친숙함이 꾸며 놓은 비용과 노력에 비해 효과는 많이 아쉬웠다. 검정 타일과 기둥이 주는 먹먹한 분위기를 떨쳐내기 어려웠다. 다만 공간 온도를 바꾸어 보려는 방도가 예술이라는 점에서만큼은 특기할만하다. 인천愛뜰 광장도 좋지만, 역사가 넓고 쾌적한 만큼 소규모 결혼식 정도가 허용되면 좋겠다.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오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맞닥뜨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역이 인천에 하나쯤 있다면 좋겠다.  

예술정거장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인천시청역 1호선 지하개찰구, 2019ⓒ유광식

1호선 라인은 중앙공원 지하를 지난다. 과거 무허가촌을 철거하며 이루어졌던 마찰과 갈등 또한 뜨거웠던 ‘중심’이었을 것이다. 붉은 고개에 자리한 시청역은 안으로 밖으로 남녀노소가 뒤섞여 움직이는 인천의 작은 왕국 같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 수원 방향 태화고속을 타려는 사람들, 중앙공원을 산책하는 어르신, 아이와 함께 애뜰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가족, 데이트 하는 청춘남녀, 관련 공무원들로 붉은 고개답게 가을을 흡수한 단풍잎이 처연하면서도 유난히 붉다. 

붉은 고개 자리에 조성된 중앙공원의 늦가을 증명, 2019ⓒ유광식
by 유광식 | 2019/11/28 19:45 | • ARTicle | 트랙백 | 덧글(2)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전SK 직원, 폐암으로 사망…사망자 1460명으로 늘어
경향신문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입력 : 2019.11.25 14:27 


지난 8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피해자들이 앉아 있는 방청석 방향으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전 SK케미칼 직원 장모씨(63)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장씨는 SK가 가습기살균제를 본격 판매하기 전부터 시제품을 사용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유족은 장씨가 24일 폐암에 따른 합병증 등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SK케미칼 전신인 유공이 1994년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개발할 당시 계열사 부장으로 일했다. 유족은 “가습기살균제가 정식 시판되기 전부터 회사에서 제품을 받아와서 썼다. 1993년부터 5년 정도 제품을 사용했다. 집에 그때 사용했던 제품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2013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장씨는 지난 8월 열린 ‘2019년도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 피해자 증인으로도 나섰다. 장씨는 SK그룹이 처음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한 때로 알려진 1994년 이전부터 회사가 시제품을 만들어 사원들에게 나눠주며 사용해보라고 권했다고 증언했다. 장씨는 고 최종현 전 SK케미칼 회장이 가습기살균제 안전문제를 무시하고 위험한 제품개발을 독려했다며 SK그룹 차원의 책임 문제를 제기했다. 

장씨는 지난 21일 숨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유한씨(72)처럼 폐암 환자였다. 정부에 피해구제 신청을 했지만,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폐 손상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로 판정받았다. 현재 정부는 폐 질환(1∼3단계)과 천식, 태아피해, 독성간염, 기관지확장증, 폐렴, 성인·아동 간질성폐질환 등 동반질환, 독성간염만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지원한다. 폐암은 인정 질환이 아니다. 유족 측은 “폐암도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하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6649명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봤다며 환경부에 공식 건강피해 판정을 신청했다. 신고한 이들 중 사망자가 계속 늘고 있다. 장씨가 숨지며 정부에 신고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는 1460명이 됐다.
by 유광식 | 2019/11/25 17:52 | • News Clip | 트랙백 |
1122_All Around Table
사업의 마무리격 참여로 다시 한 번 완주를 찾았다. 이번에는 주혜도 같이 가서 사진을 담아 주었는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가자마자 접수와 발표, 식사 후 바로 올라오는 팍팍한 시간이었지만 그 멀리 다녀 온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터이다. 

누에아트홀로 가나. 멀리 옛 잠업시험장 건물 중 일부인데 현수막이 좀 거하다. 지방으로 갈수록 현수막 크기가 큰데 그도 그럴것이 넓은 시야로 인해 집중을 요해야 함일 것이다. 농촌의 비닐쓰레기는 잘 처리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자연자연 외쳐도 우리에겐 석유를 온 몸에 바르고 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상덕 상임이사님이 번개 같이 지나가신다. 다행히 나를 알아보는 듯 짧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시고 목소리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음주도 잘 하실 듯ㅋㅋ

접수상황에서 뭔가 정신 사납게 하는 것이 있어서 잠시 멍멍하는 사이 물을 마신다. 밝은 데에서 어두운 방으로 들어와서도 그렇고 복잡스런 뭔가가 있었다. ㅠㅠ

심사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의 작가를 뽑는다는 것에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허심탄회하게 나누어야 할 온도가 식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무리답지 않게 어떤 시작으로서의 시험대 위에 올려진 기분. 알랑가 모르겄어요. ^^ 

예술팀장님의 사회로 시작합니다. 만삭의 몸으로 영차영차~~


다른 분들의 발표를 듣는데 뭔가 째려보는 것 같네. 주변에서 부스럭~ 흐느적~


소개가 유광식 소년으로 나와서 빵 터졌다. 그러면서 몇 단어를 잊어버렸다. 소설 이야기로 시작하려 했는데 타이밍을 놓이고 만 것이다. 소리도 좀 크게 하려 했는데 오른손에 ppt 조정기가 있고 잘 작동이 안되어서 자증이... 아무튼 제한시간 5분 정도를 잘 써먹고 말았음. 굴렁쇠 소년. ㅎㅎ

다함께 사진. 다함께 미소. 다함께 한 자리. 그리고 더 멀리 흩어지는 게 문화. 에술인. 에헤레오~~


밥먹고 가야지 하며 들른 식당. 사납고 연기 자욱한 식당 안에서 이것저것 와그작 먹음. 편하지는 않았다. 


올라 오는 길에 정안알밤휴게소에서 알밤까듯 낮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곱씹으며 TV를 보았다. 내용이 스토커 같은 내용이었는데 짜증이 갑자기 폭발해서 두통이 조금 왔다. 썩 꺼져라 두통이여. 던킨 커피는 역쉬 가벽게 마시기 쉬운 가벽의 맛이다. 
by 유광식 | 2019/11/25 10:06 | 2019 출판「완주소년」 | 트랙백 | 덧글(2) |
인천in 후원독자님, 창간 10주년 모임에 초대합니다
인천인터넷신문 <intersin@hanmail.net>
19.11.22 16:01 


유광식 인천in 후원독자님 안녕하십니까.
 

인천in이 12월23일이면 창간 10년을 맞습니다. 10주년을 앞두고 먼저 후원독자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시민의 신문으로 인천in이 지금까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후원독자님의 후원과 지지 때문입니다.

인천in은 지난 2009년 12월23일 CMS 후원독자 696명과 시민주주 216명(1억2천5백만원)으로 창간했습니다. 창간 초기에는 후원독자의 구독료로만 운영이 되었습니다. 적자폭도 상당했지만 이후 차츰 배너광고와 뉴스레터 대행사업 등으로 수입구조가 개선되어왔습니다. 지난 2017년부터는 상근 인력 6명 체계로 수입·지출의 균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후원독자님의 구독료가 인천in 경영의 밑바탕이자 동력이 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현재는 매출 총액 중 후원독자님의 구독료 비중이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인천in의 유지, 발전을 지지하는 버팀목입니다. 무엇보다 독립적인 지역 시민언론을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뜻과 정성이 담긴 구독료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인천in의 후원독자는 750명 선에 이릅니다. 이제 다가올 또다른 10년도 후원독자님의 뜻을 발판으로 삼아, 다시 힘을 내어 인천in을 지역의 참된 시민언론으로 일궈갈 것을 다짐합니다.

이에 창간 10주년을 맞아 아래와 같이 ‘후원독자의 밤’을 개최하오니 참여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 래 -
행사명: 인천in 창간 10주년 기념 후원독자의 밤
일시: 2019년 12월23일(월) 오후 7시
장소: 미추홀구청 본관 대회의실(1층)
by 유광식 | 2019/11/23 10:02 | • Notice | 트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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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우현로 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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