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on_Archive
by 유광식
서울나무의 겨울잠
나무들이 잠을 잔다..ㅎㅎ
by 유광식 | 2018/12/16 19:25 | 2014~ 日記 | 트랙백 |
송년회 한 접시?!
뒤늦게 당도한 그 곳엔 많은 사람들이 동굴 속을 비추고 있었다.
어쩌면 비밀모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신 내가 발을 디뎠을 적에
검문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이 공간의 공기를 조금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계획된 진행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다들 말이 많은 것을 보면
어지간히 친해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떤 비바람에 밀려 들어왔을지 모를 나의 존재가 이색적일 수도 있지만
엄연히 권리를 지니고 왔던 것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접붙이는 작업처럼 나는 기존의 틀에 붙어 들어가려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 발은 남겨두고 있다. 
나의 영역을 지킬 필요와
건너 영역을 곁해야 할
이중의 걸음새가 처음엔 어정쩡할 게 분명하다.
늦어도 되니 이젠 더이상 불편을 만들지 않는 모양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작가?주민 같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좀 아쉬웠지만
이곳의 생리를 아주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11시37분 구로행 막차를 탔다. 

* 김경원 대표님이 모두에게 준 번호는
꽝꽝!! 어쩌면 이렇게 한 개도 안맞을수가 있나ㅠㅠ
잠적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by 유광식 | 2018/12/15 20:50 | 2018~ 숭의 | 트랙백 |
사회적참사 특조위, 가습기·세월호 진상규명 직권조사 개시
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soho@yna.co.k
입력 2018.12.11. 17:15


총 49개 과제 최장 2년간.."피해자 고통 담아 진상 규명에 매진할 것"

장완익 사회적 참사 특조위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11일 두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사회적 참사 특조위는 이날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특조위 사무실에서 장완익 위원장 주재로 제22차 위원회 회의를 열고 직권조사를 의결했다. 이날 조사 개시 결정으로 특조위는 관련 법에 따라 향후 1년간 조사를 벌이고, 필요하면 1년간 추가로 활동할 수 있다. 직권조사 계획에는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소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소위, 안전사회소위, 지원소위 등 4개 소위원회가 사전에 검토한 49개의 조사 과제가 포함됐다. 특조위는 이들 과제 가운데 빠르게 결론을 낼 필요가 있는 과제는 신속한 조사로 결론을 내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면밀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과제는 우선순위 등에 따라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특조위는 가습기 살균제 같은 유해화학물질·제품이 20여년간 생산·제조·유통되고 안전한 제품으로 표시·광고될 수 있었던 이유를 규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제품과 원료 물질의 개발, 판매 전 과정을 들여다보고, 피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이유와 정부 조사·지원의 적정성, 피해 규모 등을 조사하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제도와 관행을 점검해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세월호참사에 관해서는 침몰의 직접 원인과 초동 조치, 정부 대응의 적정성, 정보기관 개입 및 진상 은폐 의혹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위원회는 직권조사와는 별개로 두 참사에 대한 제보를 받아 조사에 참고하고, 내년 1월 2일부터 180일간 피해자들로부터 피해 신청을 받아 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장완익 위원장은 "두 참사의 피해자들은 고통에 시달리며 절규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며 "특조위의 모든 구성원은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절규를 가슴에 담아 진상 규명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by 유광식 | 2018/12/11 17:29 | 2018 몸 속 어딘가의 녹음 | 트랙백 |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
   유광식 개인전을 보고... 

유광식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아니다. 그의 사진에는 현장을 담기보단 체험된 기억의 재구성(예-포토꼴라쥬 작업들)이 두드러진다. 재구성은 표현을 전제한다. 수많은 사건의 현장을 누비는 다큐멘터리 작가는 최대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 초점을 맞추지만, 유광식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시선이 먼저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체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자신이 나고 자란 유년기의 기억에 집착한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회상행위는 그의 일상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70·80년대 통기타가 유행하던 시절에나 즐겨 입었을 법한 청바지와 티셔츠의 수수한 차림,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된 듯 항상 백팩을 짊어진 모습이다. 언어 유희적 아재개그를 즐기며 당황하는 주변엔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다. 전철에서도 앉기 보다는 서있기를 선호하며 70·80년대 유행가에 해박하다. 그에겐 레트로retro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신기한 일이다. 이러한 경향을 보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던 본인의 고정관념과 배치된다. 그의 사진에서도 낡고 바랜 것들, 버려진 것들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흔적이 역력하다. 회상한다는 것. 지나갈 것을 붙잡아 고착한다는 행위가 사진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 결국 사진은 언제나 과거의 한 장면으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그가 집착하는 과거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과거의 인간다움에 대한 회복을 추구하는 것인가?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막연한 노스탤지어nostalgia를 갖고 있는 것인가? 어찌되었건 그의 유년기 성장환경은 지금의 도시적 차가움에 반대되는 인간미 넘치는 포근함이라 추측된다. 이 인간적 포근함이 지금의 작가의 정서를 지배하며 시골스러운(급변하는 대도시에서 보다는 외진 곳에서 더 오래 남아있었을 전통적인 소규모 마을구성으로서) 마을 공동체를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함께하고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던 이상향으로서의 고향을 품고 있는 것인가. 

아쉽게도 작가는 자라 성인이 되었으며, 도시로 이주해 자립하여 혼자다. 더욱이 지금의 길-소속과 보장이 없는 문화 활동가로서의 길-로 공동체적 유대감에서 더욱 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작가는 특정 집단에 소속되기 보다는 거의 언제나 무리의 변두리에 위치한 관찰자로서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자가 체제로 적극 포함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은 이미 여러 지성으로부터 지적되었다. 그렇다고 적극적 관찰자인 작가의 시선이 자조적으로 자신에게만 향해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작가에겐 시스템과 체제에서 자신만의 적당한 유효거리를 유지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만일 작가가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한다면 사회를 다각도로 볼 수 없으며, 그로인해 우리사회의 진면목을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게 하는 고유한 문화적 자성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반면 언제나 사회를 외면하거나 전체를 소외시키는 태도는 자칫 예술지상주의적 엘리트주의 또는 자조적이거나 나르시스적인 자기애로 빠지기 쉽다. 작가는 그러므로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동시에 사회를 주시해야 한다. 항상 관객이면서 주연이어야 하는 모순된 입장에 처해있다. 작가는 이 패러독스의 중심에 있고 자신이 감당할 적절한 자리를 찾아야할 것이다.

유광식이 지향하는 상호관심과 유대감은 이 도시에서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수동적으로 또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거시적 사회현상과 역사문제로 중심이 자주 옮겨간다. 그의 고향에서 멀어지게 만든 현대인의 삶의 방식들을 그는 한 사람의 성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소화해내어야 한다. 하지만 그의 원동력은 유년기의 추억에서 기인하는 미시적 감수성에 영향을 받아왔다. 아이러니다. 그러나 모든 거대 이슈가 처음부터 그리 거창하게 출발한 것은 아닐 테니, 작가의 극히 사적인 추억에서 사회적 문제로 이양된 것도 그리 문제되는 맥락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의 작업들을 통해 이러한 사유적 전이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지만 올해 3월 <복합문화공간 북극홀>에서의 그의 개인전 <완주完州이야기>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고향 완주와 유년기의 기억에 대한 치밀한 추적과 분류, 사색들에서 느껴지는 사적인 기억에 대한 집착이 그 출발점이라 여겨진다. 이전 선행과정으로서의 <완주完州이야기>전을 염두에 두고 이번 전시를 볼 때, “한 인간이 성장하여 새로이 자신의 터전을 찾아 정착하는 여정에 관한 것.”이라 한마디로 성급히 단정하기 보단 시각적 경험에 의한 전시체험을 기술하는 것이 모두에게 보다 이로워 보인다. 우선 여러 요소로 분류하여 세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도 있겠지만, 몇 가지 다소 두드러지게 다가온 부분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전시장을 처음 들어서며 바로 왼편부터 마주할 수 있는 드로잉 작업들(일상은 미지수다 2010)은 유년기 이후 낯선 곳에 이주한 작가의 생경한 인상에 대한 개인적 기록이라 하겠다. 대도시인 서울과 인천의 이질적인 인상들과 대비되는 낯선 곳에서 친근한 시간의 흔적들. 낡은 벽과 벗겨진 페인트, 철거직전의 주택들, 곧 이주를 앞둔 주민들, 예고된 퇴거를 앞두고 그에 저항하는 군상들. 부유하는 사람들의 질곡과 사연들에 작가가 감정이입하는 것도 어쩌면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과 함께 행동하는 사회활동가로서의 입장으로 작품에서 보여지기 보다는 그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표현한다. 나아가 자신의 상반된 테마들이-극히 개인적 기억으로부터 거시적 사회 문제로의 전이- 기록과 재구성이란 형식들 사이에서, 또한 사회참여와 관찰자란 입장에서 통일되지 않고 공존한다. 이는 사진이란 매체가 타인을 담지만 거기에 자신이 드러나는 이중적 속성과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도 보이듯 많은 상이한 장소와 사건의 현장들을 전하면서 창작자로서의 자기토대와 주체성을 정리하려는 역설과도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전시하는 행위 자체도 어쩌면 그런 측면에서 마찬가지다. 작가는 그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활동하였지만, 전시라는 실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역량을 어필하려하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작가의 작품분류 및 배치와 각 파트별로 배정된 절절한 텍스트 등은 자신의 지나온 활동에 대한 연대기적 병치로 보인다. 작가에겐 무엇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제각각의 중요한 사건들일지라도 마치 아트페어를 연상시키는 제각각의 다른 규칙을 갖는 작품군이 일괄적 공간 분할과 디스플레이로 역설적으로 모두를 균등하게 치부되도록 한다. 전부 튀어야 함으로 전부 똑같아지는 현상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처했던 각각의 현장과 사건들은 나름의 사연과 특이점을 지니므로 현장에 맞게 고유성을 부여하려 했음에도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규칙이라기보다는 병치와 텍스트의 첨언으로 일괄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옴니버스omnibus”식 일괄성은 무엇 하나도 그 치열한 현장에 대해 살갑게 전달하지 못한다. 이것이 작가가 기억을 처리하는 방식이라 오해를 살 정도로 단순한 규칙으로 절제되고 생략되었다. 과거의 체험에 대한 지금의 재구성이 아닌 지난 전시의 디스플레이를 장소가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에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하여 재연하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유는 시시각각 변하며 장소 또한 옮겨졌다. 당연히 각각의 작품도 이전과는 다르게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화이트큐브가 아닌 기존의 쓰임새가 다른 공간 안에서 지난 작업을 다시 전시하고자 재구성되는 설치형식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간명하고 일관된 분류와 분석을 통한 작업프로세스의 자기 확인이란 작가의 의욕을 충분히 감안한다 해도, 많은 작업분량과 공간적 특수성을 좀 더 신중히 고려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에서 그의 공간인지방식에 대해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다. 드로잉과 사진, 오브제를 다르게 배치한 것과, 레디메이드를 활용한 설치 방식, 공간구성요소인 관람석과 무대를 연결하는 사다리, 객석의 최상부에 위치한 텐트 등은 기존에 주어진 공연장이란 공간적 요소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다리의 경우 바닥의 고저가 달라 한쪽 다리의 길이를 조절하여 사진 작업을 걸어 두었지만, 단지 도시풍경으로서의 고저를 염두에 두었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또한 텐트의 경우 유동적 공간이란 메타포를 부여한다 해도, 내용을 이루는 사건(광화문 광장에서의 촛불시위)과의 관계에서 왜 그 위치(구석)에 그리고 그 높은 위상을 차지해야만 하는 지도 수수께끼다. 물론 추론하고자 하면 뭔들 찾아내지 못 하겠나 만은, 그 추론이 그가 경험한 현장과의 관계를 명확히 할 것인지도 의문이며 상당한 리스크가 따른다. 그럼에도 작가의 언급으로부터 연상하자면, 작가가 경험한 당시의 현장체험이 일종의 물성체험(다분히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것이 마치 특정 물질로서 공감각적으로 체험되는 특수한 경험)으로써 일정한 높이의 위상이 있어 그 물성을 관객에게 감각적으로 체득되게 하기 위함이라 하여도 거대한 덩어리masse의 유영과 흐름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각적 체험이 상징적 레디메이드인 텐트와 높은 위치로써 전달되리란 기대에는 사실 무리가 따른다. 초입의 드로잉의 경우엔 흰 벽에 차별 없이 배열하였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를 나란히 병치하는 방식은 그 관계성과 무관하게 층층이 쌓이는 집적(集積)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에피소드의 나열이다. 하지만 그의 다른 사진들의 경우는 다른 양상이다 (“넘어진 힘” - 벽면의 사진과 달력 등). 서구권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고전적 회화작품의 디스플레이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하나의 내용이나 모티브들의 유기적 관계로부터 규칙성을 갖기 보다는 서로 다른 포맷에 의해 적당히 위치시켰다고 보인다. 종합해보면 전체적으로 어떤 내적 규칙에 의해 다르게 분류되고 통일되었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그리고 일률적이지 못한 크기와 종류로 인해 적당히 분배해 디스플레이 되었다 보일 정도다. 도무지 직접 체험에서 기인한 창작자의 애정이 보이지 않는 도도함으로 지나온 과정을 나열하였다.

물론 하나하나의 작업을 보면 그러한 차가움이 아닌 긴 시간 이어져온 강한 관심의 맥락이 느껴진다. 특히, 바닥에 펼쳐진 텍스트 무리는 짧은 순간에 다 포괄할 수 없을 정도의 풍부한 내용을 전달한다. 그가 주워온 다양한 현장의 증거물들도 생생하다. 각각의 작품군에 해당하는 텍스트를 일일이 작성한 성실함도 결코 흔한 경우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지나온 여정을 적극적으로 대면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곡해될 위험이 있다. 누구도 결코 자신을 객관적으로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것을 공개할 경우 자신만이 아닌 제3자를 고려해야할 뿐이다. 고고하게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는 여느 순수미술 작가와는 달리, 내가 아는 유광식은 그만의 치열함과 창작자로서의 강한 의지가 있다. 반면 그러므로 자신에게 몰입하여 자신만의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숙제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작가들의 숙제겠지만. 분명 앞선 많은 작가들의 의식은 현실을 변화시켜왔고 긍정적인 영향들을 사회와 문화에 미쳐왔다. 그럼에도 지금 작가의 현실, 나아가 우리의 현실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변화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그저 열심만으로 그러한 변화가 쟁취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상의 일분일초를 의식하여 나름의 결론을 얻어야 한다. 결코 조바심으로 성급하게 종합하려 하거나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쉽게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스스로 확인되지 않아 불완전하고 불편한 상태가 창작의 원동력은 아닐까? 파울 클레Paul Klee는 “자신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이미 작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것 안에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열하게 지금을 살기 위해 지나온 행보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분명 유광식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것, 또는 사라질 것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연민이 느껴진다. 예고된 소멸을 대하는 입장은 제각각일 테지만, 특히 자신과 연결된 것에 집착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것은 비단 작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이러한 불가항력에 달관한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의 흔적을 찾아 소멸에 맞서 저항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역사와 스토리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과거를 캔다는 것은 정체성과 관련 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를 알아내기 위해 지나온 흔적을 복기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며,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것이 사적이던 사회적이던- 즉, 그 안에 살아야 하고 앞으로의 여정을 준비하는 기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발 한발 자신의 행보를 의식하며 창작자로서의 삶을 살아내려는 작가의 태도에 응원을 보내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이유다.

   20181205 김태진
by 유광식 | 2018/12/11 00:26 | 2018 몸 속 어딘가의 녹음 | 트랙백 |
1205_유광식 작가의 ‘완만한 경주’
뒷산을 오르는 소년



어린 시절 기억이 듬뿍 배인 화산면소재지(左)를 앞산 왕수봉에서 내려다본다. 고산초 옆 오성교(右)에서 북쪽 멀리, 산 능선을 보고 있자니 지난 시절이 애틋하다.  
/화산면 소재지, 고산면 만경강 

마당이 오각형인 입주농가. 고산면 소향리 762번지
/소향리 안남마을

나는 임시지만 두 어르신 내외분이 떠난 독채에서 고향을 감각할 수 있는 한 달 여의 시간을 할당 받고는 6월, 고산의 한 농가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동시간 단축을 위해 버스보단 열차를 타고 전주역에 내려, 535번 시골버스를 타고 고산터미널 종점에 당도했다. 마을은 만경강 따라 대아호 방향으로 5Km 정도는 더 가야 했다. 

양파 좀 쳐다봤다. 양파 밭을 보면 무슨 폭격을 받은 것처럼 목줄기가 다 꺾여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수확에 나선다. 비록 줄기는 꺾였어도 본연의 품위는 꺾이지 않은 것 같다. 
/오산리 원오산마을

날은 맑았다. 논에는 모두 양파 망 때문이었지만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것처럼 불그스레함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양파 철이란다. 마늘이 조금 일찍 끝났고 양파, 벼농사가 이어지고 가을에 두리감을 따서 곶감을 만드는 것이 주된 농사의 일정이란다. 
그래서였을까? 6월 입주 한 달간 아끼고 바라봐줘야 했던 것이 양파와 마늘, 감나무였다. 거주기간 중 친해진 어르신은 내가 차가 없어 양파와 마늘을 건네 줄 수 없는 심정을 안타까워 하셨다. 아~차! 했다.

청명한 날씨 속에 빨간 양파망이 멀리서 보아도 탐스럽다. 식탐하다. 
/소향리 안남마을 경로당 앞 (논)양파밭

안남마을은 구씨, 오씨, 유씨가 사는 집성촌 마을인데 마을회관 옆에 위치한 이 집은 오씨 집안의 집으로서 두 내외분이 3년 전쯤 모두 돌아가신 후 친척들이 창고처럼 이용하며 관리를 하고 있었다. 아들만 넷인 집안이란 사실이 와 닿았는데, 대체적으로 집 안 시설이 여성 편의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의아했고 그 이유였음이 드러났던 것이다. 건조장엔 마늘이 대롱대롱 매달려 매일 마르고 닳도록 바람, 햇볕과 씨름을 하고 있다. 그 사이를 거미들이 줄다리를 놓고 참새들은 무어라 무어라 외쳐 댄다. 초저녁 개구리합창과 뻐꾸기 울음소리, 빠지면 아쉬운 개소리까지. 
한편 입주 1~2주차까지는 지형습득과 걸음이 주된 활동이었다. 나로서는 30년 전 시절을 온전히 만끽할 수는 없다 해도(불가능) 자연이 뿜어재끼는 공기흐름이 흡족했던지 습기 흠뻑 머금은 5단의 날씨였음에도 잠도 잘 자고 아침은 개운했다. 나 또한 마늘처럼 말려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뒤늦게 나의 존재에 위기감을 느꼈던지 고양이 가족은 한동안 계획에 없던 도피생활을 하는 것도 같았다. 

볕 좋은 오후 녘. 시정에 매단 마늘의 마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소향리 개살구, 모과, 소.
/소향리 안남마을

매일 아침의 기상과 함께, 멀리 있지만 뚜렷한 운암산 바위과 대아호 수문은 슬며시 생활의 좌표가 되어 주었다. 비가 오고 흐리거나 완전 맑거나 할 때면 늘 운암산과 수문을 바라보게 됨이 좋았다. 나의 이 걸음을 온전한 자연이라 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다는 의미를 공고히 하려는 속 찬 마음은 도대체 뭐땀시? 
보았던 것들의 기록이 주는 가치를 알기에 나는 매일 매일 그날의 행적을 끼적이고 사진을 정리하고 그 중 한 두 장면은 그림으로 그렸다. 방송케이블은 연결되지 않았지만 나의 고향케이블은 연결이 원활했던 것 같다. 

입주기간 내 마을을 돌아보며 그렸던 20장의 그림
14.5×20.8㎝×20, 종이에 색연필

6월은 날도 좋고 장마기간 전이라 한창 마늘과 양파수확, 모심기가 이뤄지는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이른 아침 남자 어르신들은 트랙터와 경운기랑 씨름을 하고 여자 어르신들은 엉덩이에 가죽소파 부럽지 않을 원형의 농사용 방석을 깔고 앉아 빨간 망에 양파를 넣고 계셨다. 지금이야 옛날 같지 않게 트랙터의 엉덩이로 농사를 짓는 기계화가 상당수 이뤄졌고 하우스를 이용한 특용작물 농사도 많아졌다. 
오래 전 살았던 마을에서는 마늘, 양파보단 손 많이 가는(부모님께 맞은 기억도 많은) 고추농사가 대다수였다. 지금(화산면 운곡리)은 밭에다 검은 테이프를 붙여 놓은 것처럼 인삼재배가 왜 그리 많아졌는가 모르겠다. 아무튼 물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 때의 내가 아니듯이 말이다. 

밭에서 잡초 제거작업 하시는 소순덕 어르신(78). 건강한 마음과 자세에 놀랐다. 마을에서 주로 양파와 마늘, 감농사를 하며 홀로 지내신다
/소향리 안남마을

안남마을의 한 어르신을 200년도 넘은 느티나무 아래 양파 막에서 만나야 할 때가 되었던지 어떤 날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 집 뒤에 살고 계시는 어르신이었고 이미 나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순덕 어르신은 올해 일흔여덟의 연세로 23세 때 익산에서 구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다. 올 초 딸네 집 부엌 냉장고 앞에서 넘어져 오른쪽 발목 부분에 철심을 6개나 박는 대수술을 하여 큰 지네 한 마리 같은 수술흉터를 지니고 계셨다. 어르신은 연신 암시롱 않다고 하시지만 보이는 흉터가 너무 안쓰러웠다. 어르신과는 마을, 가족, 선거, 결혼, 농사, 미래 등의 잡다한 소재로 초여름 저녁을 볶았다. 

소순덕 어르신께 전달한 이야기나눔 기록 소책자.
8p, 종이에 프린트

그러다 어느 날 밭 한가운데 있는 생전에 술만 많이 잡수셨다는 영감님 묘소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담고 싶다 하셨다. 곧장 찍어드린 후 주변 잡초와 꽃나무의 우듬지 절단에 손을 보태기도 했다. 그 날 직접 그린 어르신 그림도 전달해 드리며 관계의 깊이를 더했다. 다행히 소순덕 어르신과의 긴밀함이 안남마을을 대표하는 기억의 소산으로 남게는 되었다. 땅심으로 자신을 덧입히며 강해지는 양파처럼 땅의 기운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 밀당하며 지내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찬란하다.

뜨거운 여름을 먹고 자라는 참깨. 열려라 참깨~ 열려라 완주! 꿀벌이 주문을 건다.
/오산리 신당마을

완주에서의 한 달? 사실 PT발표시간만큼이나 짧다. 그러나 남는 장면이 길다. 나의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연의 습성대로 빠르지 않게 제 때의 기운으로 완만한 뒷산을 오르는 걸음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 곳 고산(高山)은 높은 산들이 많이 있다. 산을 좋아하지만 늘 바라만 보고 사는 현재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라는, 안도감을 얻었다는 것이 입주생활의 큰 결실이라고 자신한다. 문화귀향 활성화 사업의 ‘완주 한 달 살기’에 정말 곧이곧대로 한 달을 산 소년, 어른이 되어 바라 본 고향 완주를 여러 촉수를 이용해 기록해 보았던 소중한 초여름, 방학 같은 시간이었다. 
by 유광식 | 2018/12/05 09:01 | 2018 完州_완만한 경주 | 트랙백 | 덧글(2) |
페북 종북
무엇을 정리하는 시즌인가 보다. 몇 해 전쯤부터 고민을 하며 단행하려 했지만
쉽게 그러지는 못했다. 어떤 미련이 있었던 건지 좀 더 두고 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점치던 중 전시소식 이후 정리하기로 맘 먹고 단행을 했다.
머 크게 아쉽지도 않았고 또 다른 무엇을 하고 싶지도 않다.
디지털관계라는 것이 한국에서만큼은 다소 위험수위가 높은 것 같다. 
뉴스를 보면 톡하다 욱하고 싸워 살인까지 가는 형국이 비일비재하다. 
편리하고 속도감 있는 전자세상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효과도 무지 많겠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올 해 정리할 께 도 뭐였드라?? ^^

by 유광식 | 2018/12/03 14:12 | 2014~ 日記 | 트랙백 | 덧글(2) |
[고주파 인천/16] 정산
중구 용동, 2018ⓒ유광식


1년여가 어느덧 닳아 간다. 모두가 초조함과 들뜬 분위기속에 시소를 타며 바삐 움직이는 계절이다. 유례없는 미세먼지의 출현이 못내 아쉽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김장얘기와 몇 년간 들리지 않던 캐럴도 귀에 들려오고 화들짝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몸을 떨기도 한다. 모두가 모두에게 감사하는 계절이기도 하거니와 가난한 예술가들의 동면활동을 준비하는 추임새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12월이다. 남은 한 장의 달력이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설레면서도 위태로움이 보인다.

식당에 들어가면 기본적인 주문을 한 이후에 주위를 돌아보며 매 공통된 물건을 찾는다. 달력과 시계 그리고 TV의 위치다. 작은 이층집의 살림방이었을 공간은 이제 어머니와 딸이 함께 칼국수를 빚어 장사하는 영업소가 되었다. 주문과 동시에 국숫발을 밀고 있는 주인아주머니는 허리 펼 새가 없고, 방을 오가며 반찬을 내오고 다 먹은 식기를 내가는 아주머니의 어머니는 허리가 더 굽었다. 그래도 올해 이만하면 행복하다는 인상인지 두 모녀분은 덤도 주고 웃음도 있고 모니터링도 하신다. 손님 입장에서는 오래도록 남아 그 맛을 즐기면 좋겠으나, 나는 너무 혹사하면서까지 손님들 입맛을 책임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남은 달력 한 장이 전하는 말이 참 많다. 두세 번 거쳐 찢어냈을 각도와 뜯고 나서 한 동안 바라봤을 12월의 날짜들. 모두가 애틋하게 여기는 숫자가 빛난다.

오늘, 과거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던 어머니의 단어가 새삼스럽다. ‘젖은 걸레’를 ‘추진 걸레’라 부르는 어머니의 자연스러움이 내게는 문득 어린 시절의 엄마를 추억하게 한다. 연말이라 그런지 더 없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고 가족을 보듬게 되는 시간인 것 같다. 12월이 한 달이지만 한이 없다.
by 유광식 | 2018/12/03 13:40 | • ARTicle | 트랙백 |
'겨울나그네' 배호와 인천의 인연은?
30일 화도진도서관 개관 30주년 프로그램 열려
인천inㅣ 배영수 기자 (gigger@naver.com)
18-11-30 23:42


화도진도서관의 ‘배호, 한국 가요사의 겨울 나그네’ 프로그램 진행 현장 ⓒ배영수
 
인천 화도진도서관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30일 생전 인천과 많은 인연을 이어온 가수 배호의 인생과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기획 ‘배호, 한국 가요사의 겨울 나그네’ 를 개최했다.
 
프로그램은 강연을 기반으로 중간 연주회 등이 섞여 진행됐다. 지역의 문화기획자로 활동 중인 장한섬 플레이캠퍼스 대표가 배호의 대표곡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고, 베이스 황상연과 피아니스트 황선화의 연주가 곁들여졌다.
 
강연에서는 1942년 중국 산둥성에서 광복군의 아들로 태어나 해방 후 1946년에 귀국해 인천에 정착한 이후 음악 세계를 펼쳐오며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로 스타덤에 오르며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비내리는 인천항 부두’ 등의 명곡을 남겼으나 신장염으로 1971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배호의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의 음악세계가 근대화 시기 어려웠던 대중들의 삶의 애환을 다루었다는, 정서적인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도 전했다. 지난 2011년 10월 연안부두 해양광장에 그가 부른 '비 내리른 인천항 부두'의 기념기가  그의 흉상과 함께 세워진 사실도 언급됐다.
 
프로그램이 진행된 30일 화도진도서관 현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날 프로그램의 강의를 맡은 장한섬 플레이캠퍼스 대표. ⓒ배영수

60년대를 풍미한 배호를 조명하는 이날 자리에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배영수

베이스 황상연과 피아니스트 황선화가 배호의 곡을 협연하고 있다. ⓒ배영수

by 유광식 | 2018/12/01 09:20 | • Notice | 트랙백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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