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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나만 망할지도 몰라 두달이나 고민했어요”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나만 망할지도 몰라 두달이나 고민했어요”


“창작자는 어른이면서도 아이이고, 아이면서도 어른일 수 있어요.”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씨는 어릴 적 자신의 기억을 반추했다.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는 노력이 없으면 “유치하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삼성 백혈병’ 그린 김성희 만화가

<먼지 없는 방>은 참 묘한 만화입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민웅씨 사건이 중심에 놓여 있지만, 이야기의 화자는 황씨가 아니라 그의 아내 정애정씨입니다. 군산여상 3학년 때 삼성 반도체 공장에 취업해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결국 그곳에서 남편을 잃은 애정씨의 눈으로 반도체 산업이 청정산업이 아니라 실은 화학물질로 가득 찬 위험 산업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작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사람’ 애정씨만을 향합니다. 작가 김성희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백오십여명의 피해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로 가까이 생각해 주길 소망하며 이 책을 만들었다.”
 ‘한 사람’을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는 작가의 시선에 이끌려 김성희의 전작 <몹쓸 년>도 찾아 읽었습니다. <몹쓸 년>은 박재동 화백의 추천사처럼 “기승전결도 굳이 없이 삼십대 미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을 마치 싱크대 앞 도마 위에 저녁거리 고등어를 툭 반 토막 내어놓은 것처럼 그냥 보여준” 만화였습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성희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싱싱한 ‘날것’의 느낌이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구구한 설명 없이 그저 감정의 선을 따라서 툭툭 던지는 이야기도 은근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설득력 있으면 모두 공감’
자신감으로 ‘먼지없는 방’ 작업
작가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남편 잃은
애정씨 오직 한 사람만 향해
 
“만화 실을 지면도 없어
‘투잡’ 뛰며 무명으로 10년
아웃사이더 한번 해보세요
어느 순간 확 돌아요”

<-김성희 만화가

옥탑방에서 낮엔 만화, 저녁엔 조카 봐주기

-오늘은 무슨 일을 하다가 오셨어요?
“동생이 석 달 전 둘째를 낳아서 육아휴직을 하고 모유 수유를 하고 있어요. 세살 된 첫째 아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매일 저녁 7시 이후에는 제가 조카를 봐요. 오늘은 어린이집이 방학이라서 오전에 조카를 데리고 옥수역의 물분수대를 구경했어요. 분수를 보면 애가 ‘물이 자란다’고 엄청 좋아하거든요.”

-동생네와 함께 살고 있군요?
“1층에는 부모님이, 2층에는 동생네가 살고, 저는 옥탑방에 살아요. 금호동 산비탈에 있는 조그만 집이라 1층이 곧 반지하인 구조죠. 얼마 전까지는 애니메이션 센터, 정독도서관, 한예종 작업실, 보리출판사 등에서 작업을 했는데, 요즘은 옥탑방에서 주로 일해요. 에어컨이 없어서 좀 더워요.”
 
-낮에 일하고 밤에 조카를 보면 언제 쉬세요?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찜질방을 가죠. 잠을 혼자 자고 싶어서. 같은 집에 있으면 동생에게 미안해서 쉴 수가 없어요. 차라리 찜질방이 편한.(웃음) 육아 때문에 친구들과는 놀 수가 없어요.”

-삼성 문제를 다루자는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보리출판사의 윤구병 선생님이 2년 전에 저하고 김수박 작가를 불러 삼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나온 때였죠. 저희에게 알아서 취재해 보라고 하셨어요. 저희는 삼성 백혈병이 가장 심각하면서 보통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얘기라고 말씀드렸고요.”

-정애정씨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저는 처음부터 애정씨에게 마음이 갔어요. 애정씨는 제 동생과 같은 나이예요. 동생처럼 애정씨도 집안의 막내이고, 두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저는 세상의 막내 동생은 어떤 어려움도 겪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동생을 둔 언니·오빠들만 공감할 수 있는, 비논리적인 감정이죠.”

-<사람 냄새>의 김수박 작가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주인공으로 삼았죠. 두 작가가 모두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가 있나요? 
“언론사에서 다 취재해 놓은 것,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내부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가 만화를 그릴 수는 없잖아요. 저희가 직접 취재해서 그려야 하는데, 삼성이 배타적이어서 탐사 보도가 어려웠어요. 결국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야 했고, 김수박씨는 아이를 가진 입장이라 아버지인 황상기씨에게, 저는 동생 같은 정애정씨에게 마음이 갔던 거죠.”

-아예 김용철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면 어땠을까요? 
“저희는 삼성의 상류층 이야기가 아니라 삼성의 구조에 눌린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삼성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도 그들의 목소리로 전하고 싶었죠.”

-<먼지 없는 방>에는 반도체 공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지루해하는 독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복잡하고 위험한 반도체 공정에 대해서는 애정씨도 처음 입사해서 30분 정도 배운 게 전부예요. 자기가 다루는 설비만 해도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전체 공정은 곧 잊어버렸죠. 남편이 죽고 소송을 하면서 비로소 클린룸이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돼요. 저는 독자들도 애정씨와 똑같은 경험을 하기를 원했어요. 처음에는 어려워서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애정씨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앞부분을 다시 찾아서 읽었다는 독자들도 많아요. 여고 3학년 때 취업한 19살 친구들이 복잡한 공정을 배우며 ‘이걸 다 읽으라는 거야?’ 하고 느꼈을 버거움을 독자들도 똑같이 느끼는 거죠.”

-거대 기업에 맞서며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윤구병 선생님은 살 만큼 살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시던데, 저희는 아직 한창 나이잖아요. 생각 좀 해 보겠다고 하고 두 달을 고민했어요. 삼성 얘기를 그렸다가 성공하지 못하면 나만 망하고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설득력 있게만 그려낸다면 고립되지는 않을 거다, 있는 그대로만 보여줘도 다들 공감할 거다, 이런 자신감을 확인하는 데 두 달이 걸린 거죠.”
 
-책이 나오고 삼성의 반응은?
“절대 삼성은 반응 없고요.(웃음) 광고에서만 어려움을 겪었죠. 진보매체도 광고를 안 실어줬거든요.”
  
‘몹쓸년’의 생활, 막노동 아빠의 소원

1975년생 김성희는 <몹쓸 년>의 주인공처럼 인문계 고교에서 취업반으로 옮기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엄마에게 혼나고 청소년 쉼터로 가출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빵 기술을 배운 뒤 고교 3학년 때는 샤니에 취업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열심히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공장의 아저씨들은 그를 “그저 그런 공순이”로만 취급했습니다.

6개월 만에 첫 휴가를 받고 집에 누워 있다가 “좀 놀아야겠다, 놀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겠다 싶어” 대학에 진학했고, “어려서부터 소리 나는 대로 글을 쓰는 습관 때문에 넘쳐나던 오자를 줄여보고자” 대학신문사 기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신문에서는 엉뚱하게도 만평을 맡았는데 선배들에게 매일 혼나면서 생전 처음 “만평만 아니라면, 좋아하는 만화에 10년쯤 노력을 기울여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화에 입문해 무명으로 10년 이상을 지내는 동안에는 늘 “투잡 이상을 뛰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계간지 정기구독자 확보, 전단지 붙이기, 호빵 공장, 아이스크림 공장, 식당, 커피숍 등에서 웬만한 ‘알바’는 모두 경험했습니다. 2년간의 특수학급 보조원 생활이 가장 긴 직업이었는데, “수준이 똑같아서 애들과 잘 놀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두 달 정도 일해서 돈이 모이면 만화를 그리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을 보고 “만화 그만두고 시집가면 안 되겠니?”라고 묻곤 하셨습니다.

“아빠는 늘 ‘의자에 앉는 직업을 가지라’고 하셨어요. 평생 막노동을 하셨고 지금은 영풍문고에서 청소를 하세요. 제 책도 영풍문고에서 직접 사서 엄마와 함께 보셨어요. 오빠는 경찰, 저는 만화가, 동생은 공무원이니 다들 의자에 앉는 직업이기는 하죠.(웃음) 엄마는 피터팬의 웬디 같은 여자예요. 남을 돌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나 돌봄을 받지는 못한, 그래서 조금 악에 받쳐 있는 분이죠. 오빠나 동생네 애들도 모두 엄마가 키우셨거든요. (잠깐 울먹) 엄마는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우리를 각자 자기 가치관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어요. 엄마가 그런 식으로 투자해서 내가 엄마랑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됐으니, 엄마랑 싸우더라도 내 고집을 관철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만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왕따를 당했어요. 어느 날 여자애들 7~8명이 뒷산으로 저를 부르더니 ‘이제부터 널 때리겠다’고 하더군요. ‘왜 때리는데?’ 물으니 자기들끼리 뒤에 가서 회의를 하고는 ‘넌 말이 없어서’라고 대답했어요. 걔네들한테 맞고 나니까 갑자기 세상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 말도 많아졌어요. 그러나 말을 않던 애가 말을 많이 한다는 건, 그저 말 잘하는 애를 흉내 내는 거예요. 말을 뱉어도 관계나 상황에 맞지를 않으니 더 왕따가 되죠. 그때 저를 왕따 시킨 애들이 교회 친구들이라, 교회 안 가려고 찾은 게 만화방이었어요.”

-왕따 경험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오랜 시간을 거쳐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말을 적절히 하는 법을 터득했어요. 저를 때렸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도 그때쯤이에요. 저쪽 끝에서 그 친구가 걸어오는데 서서히 긴장감이 쌓이다가 서로를 외면하지는 못하고…. 그런데 그 친구가 나를 때린 걸 기억하는 눈빛으로 살짝 웃으면서 지나갔어요. 폭력의 대상이었던 나를 기억하고 겸연쩍어하면서 미안해하는 눈빛. 그게 참 따뜻했어요. 그때 감정이 많이 풀렸어요.”

<몹쓸 년>은 자전적 만화이지만 시간적 순서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감정의 결을 따라서 이야기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때로는 불친절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각 장을 덮을 때면 묘하게도 작가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는 가족관계와, “이대로 팔려갈 수는 없다”는 30대 여성의 흔들리는 일상이, 만화에 자주 내리는 비처럼 독자의 마음을 적십니다.

“저는 기억의 감정을 풀어낸 순서대로 작업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왕따 사건을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저 자신에게 납득시켜온 것과 같은 작업이죠.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아파했던 부분, 쉽게 넘어가지 않는 부분만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고리로 연결되어 서사가 되는 거예요. 그보다 완벽한 서사가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은 너무나 납득이 되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김 작가의 만화를 읽다 보면 “꼭 누구마냥 확 꺼지네. 가스 냄새만 퍼뜨리고”처럼 뜬금없이 툭 한마디를 던질 때가 많습니다. 독자보다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요. 

“제 만화의 독자는 딱 한 명이에요. 한 명의 독자에게 말을 걸고 제 감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지와 같아요. 늘 그렇게 작업해 왔어요. 그게 책으로 나오면 독자가 확장될 뿐이죠. 물론 그렇게 감정을 나누는 대상이 확 사라지기도 해요. 믿었던 사랑이 확 꺼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꺼지는 게 사랑의 속성이더라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요.”

황지우 총장 가슴 불붙인 텐트시위의 주역

-요즘 넘쳐나는 멘토들은 흔히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라”고 하잖아요. 만화가야말로 그런 선택일 수 있는데,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지 않나요? 
“만화를 시작하고 2년쯤 지나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서 만화의 진짜 맛을 알게 됐어요. 걔한테 감정을 말해주려고 그림을 그리는 게 행복하고 좋았죠. 멘토들 얘기는 살짝 어이가 없어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처음부터 아는 애가 어디 있어요? 경험해 봐야 뭘 좋아하는지 알죠. 어떤 직업이라도 그걸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저는 한 달에 15만원으로도 살고 100만원으로도 살아요. 자기 직업의 특징을 알고 선택한 이상 투정 부리는 건 유치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삶이 너무 불안정하지 않도록 의료보험 같은 사회안전망은 확보해 줬으면 좋겠어요.”
 
-만화가로 10년 이상 일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은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친구들 열쇠를 빌려서 한예종 도서관을 작업실로 삼았어요.(웃음) 그런데 고지식한 도서관 아저씨가 계속 쫓아내셨어요. 실어줄 지면도 찾기 어려운 아웃사이더인데 그렇게 쫓겨나다 보니 우울해지더군요. 그래도 그 줄다리기하면서 1년 반을 다녔어요. 아웃사이더 한번 해보세요. 어느 순간 확 돌아요. 당당히 도서관을 이용할 테다!(웃음) 원서를 넣고 합격한 뒤에는 ‘아저씨 때문에 대학원 들어갔다’고 커피도 뽑아드렸죠.”
2009년 한예종에서는 황지우 총장이 사표를 쓰고 시간강사 위촉까지 취소되자 학생 한 명이 황 교수의 강의를 듣고 싶다며 일인 텐트 농성을 시작했고, 동조하는 텐트가 하나둘 늘어 나중에는 작은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박재동 화백에 따르면, 그 한 명의 학생이 바로 김성희였다고 합니다.

“<내가 살던 용산>을 작업하던 때였는데 제가 듣고 싶었던 선생님들 수업이 다 없어지는 거예요. 첫 학기 때는 학부생들이 맞서 싸웠지만, 두번째 학기가 되자 과제 등에 쫓겨 동력이 확 떨어졌죠. 화도 나고, 마감에는 쫓기고, 결국 1인용 텐트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거기 살면서 작업을 했어요. 비상대책위원회나 다른 과 애들이 바닥을 깔고 전등도 연결해줬는데, 한잔하고 놀다가 재미있었는지 하나씩 텐트가 늘더군요. 오자가 많은 대자보를 제가 붙이니, 다른 애들도 따라서 대자보를 붙이고, 인터넷에는 매일 일기를 썼죠. 나중에 황지우 선생님을 뵈니 ‘나의 가슴에 불을 붙여줬다’고 하시는데,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웃음)”

-여전히 결혼에 대한 압박이 많죠? 
“동생이나 친구들을 보면 사회적 생존방식으로 결혼만큼 합리적인 게 없어요. 그러나 감정의 생존방식으로는 결혼이 결론이 아닐 수 있겠더라고요. 감정이란 불안할 때 움직이기 마련인데, 결혼은 안정적이니까 부딪힘이 없어 운동성이 떨어지기 쉽죠. (책상에 얼굴을 묻으면서) 저는 이렇게 자꾸 관찰자로만 살아요.(웃음)”

김성희는 “날것은 요리된 것보다 빨리 썩고, 썩었을 때 더 냄새가 난다. 그걸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날것처럼 살아있으면서도 날것의 위험성을 아는 관찰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말 때문에 왕따가 되었던 김성희는 오랜 세월 아주 천천히 자신만의 언어세계를 구축하면서 말 대신 그림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넘어 이제는 애정씨 같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그려냅니다. 남보다 늦게 배운 말, 여전히 오자가 많은 글,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그림으로 침묵하는 세상을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외면하는 거대 담론에 피로를 느껴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시대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오직 ‘한 사람’에게 주목하는 김성희의 방식이 어쩌면 그 닫힌 문을 여는 새로운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관측을 하게 됐습니다.

녹취·진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기사등록 : 2012-08-17 오후 08:42:39  기사수정 : 2012-08-17 오후 09:32:28

by 유광식 | 2015/10/21 10:01 | • News Clip | 덧글(3) |
Commented at 2015/10/21 11: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5/10/21 13:18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at 2015/10/21 17:47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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