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공동취재단, 박영환 기자 yhpark@kyunghyang.com
경향신문 입력 : 2015-10-20 23:04:49ㅣ수정 : 2015-10-21 09:48:37
ㆍ단체상봉 ‘눈물바다’
예순일곱 흰머리 아들이 생전 처음 보는 여든셋 노인이 된 아버지를 안고 흐느꼈다.
6·25 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 손권근씨(83)와 아들 종운씨(67). 남에서 온 아들은 북에서 온 아버지의 명찰을 뒤집어본 후 한참을 쳐다봤다. 그리고 두 사람은 꽉 껴안았고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들은 “태어나서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아보느냐”며 울먹였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못했다. 손씨 맏며느리 차순례씨(65)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줄 알고 40년간 제사를 지냈다”며 “살아 계시단 걸 알고, 만나기까지 해서 너무 반갑다”고 인사했다.

“누나, 어찌 살았수”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남측 김복락 할아버지가 북측에 두고 온 누나 김전순 할머니를 만나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다. 금강산 | 사진공동취재단
동생 이흥옥씨(80)는 65년 만에 보는 오빠 이흥종씨(88)를 한눈에 알아보고 뛰어나갔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등장한 이씨에게 달려가 “오빠” 하며 울먹였다. 흥옥씨가 옆에 있던 정숙씨(68)를 가리키며 “오빠, 딸이야, 딸”이라고 하자 오빠도 결국 눈가가 붉어졌다. 두 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만난 딸은 “아버지 나 딸 정숙이 보고 싶었어요”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소원 풀었어”라며 눈물을 훔쳤다. 딸은 다시 “아버지 엄마 생각하셨어요”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결국 “미안해서, 미안해서”라며 통곡했다.
20일 오후 3시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남북 단체상봉이 시작됐다. 2시40분쯤 먼저 면회소에 입장해 북측 가족을 기다리는 남측 상봉단 389명의 표정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뒤이어 북측 가족들이 하나둘 입장했고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오더니 행사장은 금방 눈물바다로 변했다.
전쟁 통에 남편과 연락이 끊긴 이옥연씨(88)는 행여나 남편이 못 찾을까봐 이사도 하지 않고 신혼집에서 홀로 억척스럽게 아들을 키웠다. 그런 이씨가 이날 분홍색 저고리에 보라색 치마를 입고 꿈에 그리던 남편 채훈식씨(88)를 만났다. 남편은 중절모 차림에 짙은 회색 양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들 희양씨(65)는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한동안 울었지만 이씨는 응어리진 서러움을 털어낼 수도 없었다. 65년 만에 만난 남편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지만 아내는 “이제 늙었는데 (손) 잡으면 뭐해”라며 뿌리치고 혼자 흐느꼈다.

가족사진 보며 이야기꽃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인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만난 가족들이 사진첩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금강산 | 사진공동취재단
채씨는 아들에게 “10년을 혼자 있다가, 통일이 언제 될지 몰라서 (결혼을 했다)”라고 재혼한 사연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이해해다오”라며 흐느꼈다. 채씨가 흐느껴 울기만 하자 북측 며느리는 김일성 주석이 채씨에게 줬다는 표창장과 훈장을 꺼내 보였다.
북측 남편 오인세씨(83)도 결혼한 지 1년도 안돼 헤어진 아내 이순규씨(85)를 65년 만에 만났다. 아들 장균씨(65)는 며느리와 함께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에게 큰절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손을 교차시켜보고, 얼굴을 맞대보면서 연신 “닮았지”라고 주변에 물었다. 이순규씨는 “보고 싶었던 것을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 눈물도 안 나온다. 평생을 (떨어져) 살았으니까 할 얘기는 많지만 어떻게 (3일 만에) 다 하겠나”라고 회한을 토로했다.
이산가족 단체상봉장은 남북 96가족, 530명(북측 141명·남측 389명)의 사연과 아픔으로 가득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시간의 단체상봉에 이어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 남측이 주최하는 환영만찬에 참석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상봉 이틀째인 21일에는 금강산호텔 등에서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단체상봉이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