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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인천in] 이삿짐이 된 열우물 마을(십정1동)
이삿짐이 된 열우물 마을(십정1동)



나에겐 2002년 3월, 서울에서 이삿짐 화물자동차를 타고 경인고속도로를 달려 간석동 희망백화점(현 올리브아울렛) 동네에 도착했던 모든 여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에 지낼 적에 가끔 가던 막내이모집이 역에서 가까운 십정동이었다. 당시 계단 높은 동암역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 인천 곳곳을 거닐며 알게 된 사실은 막내이모집이 십정2동이었다는 것과 집이었던 간석동과는 무척 가까웠다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기억의 편린을 껴맞추다 비로소 인천에 유입한다.   

2014 ⓒ유광식 

십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지구.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은 열우물 마을(216번지 일대)이라고 지칭되는 곳이다. 동암역에서 5분여 걷다 한 고개 넘으면 열우물목욕탕을 지나고 좁은 골목을 따라 언덕빼기 끝에 서면 탁트인 시야에 움푹 파인 분지형태의 마을이 발아래 펼쳐진다. 이윽고 바람 한 줄기가 옆구리 푹 찌르고 지나간다. 그뿐이다. 그런데 열우물 마을은 도시 특유의 직선이 숨은, 곡선의 골목과 높이가 숨겨져 있다. 금세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하는 이 장소가 좋아졌고 그 행적이 7년쯤 되었는데, 가로와 세로로 뻗어 있는 골목길은 유년시절 뛰어 오르던 산길과 중첩이 된다. 또한 그 길은 모두 연결된다는 점이 놀라운데 들추어 올린다면 그물망과도 같다. 과연 누가 볕도 잘 안드는 작은 마을에 커다란 그물을 던져 놓았을까?

과거 이 마을은 (재)선인학원이 도화동 부지에서 쫓아낸 사람들과 주안역 북쪽 수출5.6공단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 약간의 피난민 등 낮은 사회계층이 오밀조밀 이웃을 맺고 살던 동네였다. 마을엔 여느 마을처럼 여러 공동우물이 있었고 좀도둑도 많았으며 부인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살기 어려웠다는 진흙탕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1990년대 초 마을개선의 이야기가 떠돌아 잠시 땅투기 바람이 불었으나 지지부진하였고 20여 년간 주민들은 개선이 아닌 최선으로만 살아 왔다. 그 내용이야 마을 구석구석 켜켜이 쌓여 있다. 현재 공가율이 무척 높으며 지난 2011년에는 태풍 ‘무이파’의 서해안 진로로 말미암아 다세대 집 한 채가 폭삭 무너지기도 했다. 이렇게 열우물 동네에는 ‘가옥의 무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실정이다. 순간 야트막한 산은 애초에 공동무덤이었다던 70년대 중반부터 이곳에서 지내 온 어느 어르신의 말씀이 생각난다.  

위,아래:2016 ⓒ유광식

월드컵 분위기를 우산 삼아 서울에서 인천으로 조용히 이주한 2002년. 당시 찬찬히 들여다 본 인천의 현안이 명품도시 그리고 재개발이었다. 보면 열우물 마을이 타겟이 될만도 했겠지만 스케일이 달랐던지(당시 시장은 바다매립도시 송도를 건설한다.) 차일피일 은밀하게 소외당하며 그 긴 세월이 오늘에 다다라 있다. 올해 기업형임대주택 ‘뉴스테이’ 사업착수로 마을은 사라지며 뒤바뀔 예정이고 사람들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구분으로 이사짐을 꾸려야 할 것이다. 

위:2014, 아래:2016 ⓒ유광식

상정초등학교 옆으로 옛날 배밭이 즐비했다던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나무란 나무는 다 베고 흙은 파내어져 새빨간 속살을 내비치더니 평탄작업 끝에 컨테이너 박스와 주차장, 상업시설을 하나둘 들인 나머지 배나무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멋이 상실되고 말았다. 또한 집들은 이미 노후화가 상당하고 위태로우며 중력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폭삭 주저앉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일까 주거민의 입장에서 하루라는 의미는 어찌 보면 겨울에 얼어 터지는 수도관처럼 박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15년 2월, 마을분들은 더 이상의 마을 환경개선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LH공사 본사가 있는 성남으로 관광버스를 대절해 원정시위를 다녀오기도 했다. 

위:2013, 아래:2014 ⓒ유광식

어른이 되면 자신의 기억이 머물던 장소를 찾고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고 꼭 그 장소여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유년의 기억이란 색이 바랠지언정 단조로운 평면이 아닌 3차원적 감각 좌표를 지니기 마련이다. 평소 눈여겨 두진 않았지만 상정초등학교 옆 배밭의 사라짐은 본인뿐만 아닌 말은 안해도 기억이 겹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이었음이 틀림없다. 한편 하나 같이 집 옥상엔 파란색, 노란색, 하얀색 등 형형색색의 급수통 즉 우물을 하나씩 떠받치고 있는데, 옛날 물이 많이 나와 그 풍족함의 상징인 ‘열우물十井’이란 표기가 지금은 실제 우물도 말랐고 지붕 위 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빈집의 숫자를 무시할 수도 없어 그 뜻이 무색해졌다. 간간히 체육대회와 크고 작은 집안의 잔치가 무성했다는 이야기는 생활문화공동체사업의 결과로 그 맥을 되짚을 뿐이다. 이런 모양을 보고 있자니 결국은 나와 당신의 지난 삶이 위태로워지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경고카드 한 장 받은 느낌이다.(올해는 퇴장이다.) 내게는 어찌 되었던 유년의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대신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위:2015, 아래:2009 ⓒ유광식

작은 마을답게 조용한 동네인 이곳엔 한 미술작가의 노력으로 벽화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미적효과에 앞서 마을이 사라지기 전까지라도 부실한 벽처리를 겸해 깨끗하게 보여지면 좋겠다고 한다. 본인이 사는 동네를 걷고 그림으로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곱다는데에 이의는 없을 것이다. 열우물에서의 기억이 나에게는 인천을 딛고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분명한데 지역과 공간, 활동에 대한 기준을 가늠할 수 있었음에 의미가 더 깊다.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익숙하다는 것은 앞선 노력의 기억이 일군 결과에 얼마만큼 기대고 있다. 다다를 수 있는 공간을 잘 가꾸어 가는 다짐과 행동 속에 마을은 세워지는 것이고 견고해지는 만큼, 태어나는 후세 아이들의 정서에 분명 맛있는 열매가 된다. 한 예로 초등학교 때부터 열우물에서 줄곧 지내 온 최광현님은 “나는 어렸을 적 기억이 생생한데 복숭아꽃이 피었을 때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 그리고 배꽃, 복숭아꽃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어. 그러한 좋은 정서가 있으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안에 바람이 있고 사람살이가 그 정도 되어야 하지 않겠냐 싶어. 나까지 현실적이면 얼마나 세상이 피곤하겠나? 마누라 바가지나 긁겠지.ㅋㅋ”라며 지난 날 이야기를 전해 주시기도.

타 지역권으로 이사를 오면서는 그 빈도가 낮아졌지만 열우물 마을은 내게 인천의 기준 좌표로서 언제 어디에 놓여져도 불안감을(작가는 서울에 갓 올라와 집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감해 준다. 봄이 되면 꽃과 나무가 움트고 여름에는 골목 속 지저귐, 가을엔 감과 대추, 축제가 열리는 그런 곳 하나쯤이 과거 짠물의 기억만큼이나 특별하진 않다손 치더라도 편안하지 않은가 묻고 싶어진다.  

2012 ⓒ유광식

열우물 마을은 걷는 자에게 뽀얀 복숭아 꽃잎과 속살처럼 설레는 인천의 작은 삶의 공간이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환경개선사업으로 모든 게 정리되는 때이다. 각종 단체의 사업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삶도 그리고 각자의 추억도 정리할 시점이다. 부디 빠른 유속이 아닌 잔잔히 볕 가득 들깨 말리듯 따뜻한 수순이었면 좋겠다. 이제 북적이던 옛 시즌이 지났다고 하나 그에 못지 않은 생명력과 삶 속의 치열함은 다시 소생할 것이다. 지금이야 영화․드라마 촬영 장소로 그 존재감이 노출되는 게 조금은 서글픈 일이지만 우물과 배꽃 날리던 시절의 기억이 이사짐 안에 함께 넣을 수만 있다면 지난 삶은 충분히 가치를 지닐 것이다. 

겨울이면 연탄소비가 있는 십정1동 열우물 마을. 마을을 가로 지르는 중앙의 넓은 소방도로가 여전히 사람들을 동암역과 주안 수출5.6공단으로 연결하는 무빙워크마냥 부지런히 움직인다. 

2014 ⓒ유광식
by 유광식 | 2016/04/24 21:40 | • ARTicle | 덧글(3) |
Commented at 2016/05/23 13: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6/05/23 17:58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유광식 at 2016/06/1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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