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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05/100 교과서 옷 입던 날
7.10

시골학교에서는 학년이 바뀌어도 아이들은 그대로이다. 늘 1반이며 그럴 때마다 나는 2반, 3반을 은근히 동경하기도 했다. 그래도 새 학기에 담임선생님은 바뀐다. 다들 누가 될 건지 10명 남짓의 선생님들 중에서 점쳐 보지만, 늘 호랑이선생님(뚱뚱한)만은 꼴찌로 제외한다.

학기 시작 전 아이들의 네모 가방 속엔 교과서가 가득 담긴 채 아이들은 집으로 향한다. 그러다 저녁을 먹고 난 어느 날, 엄마는 형과 나를(여동생은 입학 전) 불러다 교과서를 가져오게 하셨다. 그러고는 중요한 순서로 책을 줄 세우고는 엄마가 쟁여 둔 지난 달력을 가새(가위)로 잘라가며 하얀 옷을 입혀 주셨다. 종이를 접어서 가새로 자르고 하는 것이 신기해서 무릎을 꿇고 빤히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형과 나는 좀 더 깨끗한 종이로 하겠다고 티격태격하고, 달력이 모자라 마지막에 남는 교과서는 으레 음악, 미술, 체육 교과서가 된다. 당시에도 예체능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하얗게 싸인 교과서 묶음을 보며 이제부터 공부 열심히 하고 훌륭한 사람 되자고 가슴 속에 다짐을 해보지만 하얀 달력커버는 3월 한 달을 가기도 전에 벗겨지기 마련이다. 이유라면 커버에 쓴 교과서 제목글씨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굵은 매직(귀했을)으로 엄마가 국어, 산수, 사회를 써 준걸로 안다. 그러나 나는 글씨가 맘에 안 든다고 토라지고 이내 엄마의 손바닥은 활공을 시작했다.

엄마가 가장 참하게 보이는 경우는 책 커버를 싸고 바느질을 할 때였던 것 같다. 그 외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들지 모를 욕과 손바닥을 피해야 하는지 내 몸은 안다. 난 그래도 책이 하얗게 옷을 입던 날, 가슴 속에 꿋꿋한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결심은 오래 가지 않는다. 

by 유광식 | 2017/07/11 00:01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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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7/07/11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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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7/07/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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