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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작가들65호] 송학사, 가려지지 않는 그 시절
송학사, 가려지지 않는 그 시절 



▲ 유광식_함봉산 중턱에서 바라 본 구)송학사 부지에 들어선 부평아트센터(중앙)_2018


구름 낀 하얀 공간, 송학사

90년대 초, 십정동 막내이모집에 가려면 동암역에서 걸어가야 했는데, 열차가 백운역白雲驛에 다다를 적엔 우측 옆으로 포도밭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포도밭의 굵은 포도 줄기를 보면서 도착을 예감하고, 절벽 옆을 지나는 기분의 형세인 백운역을 지나 동암역에 당도하곤 했다. 백운역은 한자풀이로 보면 하얀 구름의 역사다.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 하얀 건물로 표상되는 옛 군 기무부대가 바로 그 위에 위치했다. 부대답게 운동장도 있고 울타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를 통해서도 그곳에 대한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간혹 인천의 민중운동사에서 언급되는 것 말고는 군 시설인지라 관심도, 정보도 희박했다. 
그 시설은 육군7302부대라고 하는 부대명 외에 실제 이름이 따로 있었다. 바로 ‘송학사’. 송학사란 이름이 군 기무부대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은 들고나는 선배들의 이야기 속에서 알게 되었다. 예술인들이 예명을 쓰듯이 이 또한 예명일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예술인들의 예명이 돋보이기 위한 것임에 비해 이 부대의 예명은 감춤이라는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이란 점이다. 운동장은 현재 주차장과 부평아트센터로, 철거하지 않은 부대의 시설막사는 부평생활문화센터 ‘공감168’로 이용되고 있다. 앞면은 대리석으로 탈바꿈을 했지만 뒷면은 하얀 페인트칠만 되어 있고 지하층의 낮은 창문이 말해 주는 스산함도 느껴진다. 

 
▲ 유광식_공감168 건물. 페인트칠만 되어 있는 뒷면과 대리석이 붙어 있는 옆면(좌)_2018
▲ 유광식_공감168 건물. 뒷면 창문시설(우)_2018


일상에 침투한 공안시설, 침묵의 위장술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만든 긴 독재의 시간은 나라를 공포에 휩쓸어 넣었다. 독재의 여러 부산물 중의 하나였던 기무사는 전국에 분포하고 있고 사찰, 감금, 폭행, 고문 등을 일삼은 인권유린의 장소로 검은 공간의 표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검은 시설의 겉모습은 하얀 세상이었다. 하얀 구름 위에 앉으려 했을까? 백운역 또한 이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습성일 것이다. 
7~80년대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한 이들에게는 보안과 인권, 민주라는 단어가 지겨우리만치 익숙한 단어겠지만, 그 무렵 성장의 시기를 보냈던 나로서는 책과 뉴스, 영화 등에 의존해 그 의미들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자세히 말해 주는 이도 없었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세계는 은폐된 공간들을 형성하며 일상에 침투했고, 나는 말해주는 이 없이 홀로 습득한 의미들을 엮으며 이제야 그 하얀 은폐를 바라보게 되었다. 서울의 남영동, 소격동 등의 공안본부 공간은 드러나 있어 쉽게 알 수 있었다지만 그것은 과거 고문의 장소로 이름을 떨치던 공포의 공공연한 노출이었다. 그에 반해 지역의 주택가에 사뿐히 내려앉아 위치해 있는 하얀집들의 정체는 또 무엇이었던 것일까? 부평생활문화센터는 왜 하필 색감을 바꾸지 못했을까? 

▲ 유광식_남동구 만수서로105번길 21. 주택가에서 올려다 본 구)보안분실 뒷면의 좁은 세로형 창문_2018


공간의 역사를 공유하는 과정이 새 간판보다 우선

한두 달 전에 서울 여의도의 ‘SeMA 벙커’에 전시를 보러 갔다. 그 벙커는 과거 고)박정희 대통령 시절 지어진 곳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구)여의도광장 아래에 양변기까지 갖춰 놓으며 파놓은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이었다. 발견된 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들어가는 입구 세 군데 중에서 현재 한군데만 개방되어 있어 입구를 찾느라 여의도환승주차장 위를 빙빙 맴돌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그곳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징용자의 유해발굴과 귀환을 다룬, 뼈아픈 역사를 조명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2018.3.1~2018.4.15>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런 공간이 어김없이 그러하듯이 여태까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었지만 현재는 시민에게 개방하여 그 장소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감옥 또한 대표적인 인권의 회복처로 새롭게 태어난 사례라 할 수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인 소격동 구)기무사 건물도 처음에는 논란이 많았지만 공간의 역사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며 <플랫폼 인 기무사 2009/2009.9.3~2009.9.25> 전시행사를 통해 공간노출을 시작했다. 인천 송학사 부지는 이런 움직임이 미흡했던 건 아니었을까? 행여 감춘다고, 감춰진다고 오해했던 건 아닐까? 부평생활문화센터의 앞면은 차가운 대리석이 붙어 있지만 뒷면은 그대로인데, 이는 ‘눈 가리고 아웅’격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 유광식_구)송학사 뒷모습. 그래피티 문구가 지난 역사를 은근슬쩍 내비치는 듯하다_2018


공간의 역사를 공유하는 과정의 중요성

함봉산에 올라 봤다. 떡하니 센터가 자리하고 있는 너른 부지는 얼핏 보면 문화스럽다. 한 때 공포의 장소였던 곳이 문화로 포장이 되었다. 또한 인권유린은 없고 인권 친화적 공간이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천 송학사 건물은 자세히 살펴보면 여전히 공안의 장치들이 곳곳에 고스란히 새겨져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하창문의 모양이라든지 인천 만수동에 위치한 구)보안분실의 길고 좁은 세로형 창과 어두운 암갈색 벽돌이 보여주는 느낌은 여전히 은폐된 공포와 같다. 공포의 흔적이 숨겨진 지금의 회관에서는 잊히지 않는 공포를 공간의 탈바꿈으로 거세하며 환희에 도달하려는 강박적 면모가 엿보인다. 공포는 거세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할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노출이 필요하다. 망각을 통한 즐거움이 아닌, 공포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대의 아픈 사건을 간직했던 장소들은 여러 분야에 존재한다. 이는 꼭 공안건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광주에는 5월 민주의 공간이 있고 안산에는 세월호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천도 역사가 증언하는 뚜렷한 장소와 공간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오래된 건물이 오래된 기억임을 왜 알 수 없을까? 
공간은 이미 그 존재만으로도 정치적 구조를 형성한다.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힘겨루기는 치열할 수밖에 없는 선거와 별반 다름없는 것이다. 더 이상 이념주장만을 하며 싸울 일이 아니다. 현재 유행 아닌 유행격인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아프고 두려운 역사의 현장을 보다 현장성 있게 우리 안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역사의 실체에 다가서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을 얼마만큼 열어두고 공간의 증언에 충실할 것인가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민들의 역사 인식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아픈 역사를 지닌 공간을 빠르게 탈바꿈시키는 것은 매우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흰 페인트칠과 시민친화적인 간판 이전에 공간의 역사를 시민들과 나누고 현장을 가늠하며 기록하고 되새기는 과정이 보다 민주적이고 문화적으로 보인다.

  
▲ 유광식_구)송학사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좌)_2010
▲ 유광식_구)송학사 건물의 현재 모습(우)_2018


이제는 진짜 송학사에 가고 싶다

인천은 과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첨예한 기지로서 역할을 하였고 수많은 인사들이 경찰서와 기무사, 안기부 등에 무차별적으로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그들의 희생 스토리만 남아 있는 얼룩진 현대사는 박제 이상의 의미가 없어 보인다. 꾸준히 그 장소에 대해 탐색하고 기록하고 발표하며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과거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성과 만나 새롭게 돋아날 것이다. 이어가는 부분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장소가 거기 단지 있기 때문에 기억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판단은 시민들의 몫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천 송학사 부지는 적극적인 개방이 되지 못했다. 송학사는 중간에 이름이 몇 차례 바뀌며 부평 음악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 부평생활문화센터와 부평음악산업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공감168’이라는 이름에 비해 공감적으로는 조금은 미흡한 인천의 장소다. 과정으로서 숨 쉬는 장소가 아쉽다. 인천 송학사에 대한 나의 물음에 그곳은 군기무사였다는 것 이상의 대답이 오지 않았다.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모르게 놓아 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충만한 사회적 여론 속에 터에 대한 충분한 벌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만 연신 하게 되었다. 인천은 해양융합도시라고 한다. 광역자치단체로서 공간성이 크고 중요한 위치지만 역사의 산물에 대한 자세는 아직도 미숙해 보인다. 어떤 민원인지는 몰라도 공론의 수렴 없이 멀쩡한 지역유산을 부수고 이해관계자들의 욕망만 주차시켜 놓은 주차장 건립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것들은 건설이 아니라 돌봄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인천 송학사 부지의 연유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혼란스런 마음만 가중되었을 뿐, 어디에도 맛깔스런 정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권력의 다툼과 경쟁 속에 은폐되고 은닉되어 있던 장소들이 사회 안팎으로 ‘민주’라는 이름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열띤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는 평화와 인권의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뜬구름 잡듯 말로만 들리는 인천 송학사는 재미가 없다. 정말로 이제는 송학사에 가보고 싶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야 했겠지만 이야기가 담아지길 부탁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다. 
by 유광식 | 2018/05/10 09:56 | • ARTicle | 트랙백 | 덧글(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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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8/05/1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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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8/05/15 08:42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유광식 at 2018/06/3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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