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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1205_유광식 작가의 ‘완만한 경주’
뒷산을 오르는 소년



어린 시절 기억이 듬뿍 배인 화산면소재지(左)를 앞산 왕수봉에서 내려다본다. 고산초 옆 오성교(右)에서 북쪽 멀리, 산 능선을 보고 있자니 지난 시절이 애틋하다.  
/화산면 소재지, 고산면 만경강 

마당이 오각형인 입주농가. 고산면 소향리 762번지
/소향리 안남마을

나는 임시지만 두 어르신 내외분이 떠난 독채에서 고향을 감각할 수 있는 한 달 여의 시간을 할당 받고는 6월, 고산의 한 농가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동시간 단축을 위해 버스보단 열차를 타고 전주역에 내려, 535번 시골버스를 타고 고산터미널 종점에 당도했다. 마을은 만경강 따라 대아호 방향으로 5Km 정도는 더 가야 했다. 

양파 좀 쳐다봤다. 양파 밭을 보면 무슨 폭격을 받은 것처럼 목줄기가 다 꺾여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수확에 나선다. 비록 줄기는 꺾였어도 본연의 품위는 꺾이지 않은 것 같다. 
/오산리 원오산마을

날은 맑았다. 논에는 모두 양파 망 때문이었지만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것처럼 불그스레함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양파 철이란다. 마늘이 조금 일찍 끝났고 양파, 벼농사가 이어지고 가을에 두리감을 따서 곶감을 만드는 것이 주된 농사의 일정이란다. 
그래서였을까? 6월 입주 한 달간 아끼고 바라봐줘야 했던 것이 양파와 마늘, 감나무였다. 거주기간 중 친해진 어르신은 내가 차가 없어 양파와 마늘을 건네 줄 수 없는 심정을 안타까워 하셨다. 아~차! 했다.

청명한 날씨 속에 빨간 양파망이 멀리서 보아도 탐스럽다. 식탐하다. 
/소향리 안남마을 경로당 앞 (논)양파밭

안남마을은 구씨, 오씨, 유씨가 사는 집성촌 마을인데 마을회관 옆에 위치한 이 집은 오씨 집안의 집으로서 두 내외분이 3년 전쯤 모두 돌아가신 후 친척들이 창고처럼 이용하며 관리를 하고 있었다. 아들만 넷인 집안이란 사실이 와 닿았는데, 대체적으로 집 안 시설이 여성 편의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의아했고 그 이유였음이 드러났던 것이다. 건조장엔 마늘이 대롱대롱 매달려 매일 마르고 닳도록 바람, 햇볕과 씨름을 하고 있다. 그 사이를 거미들이 줄다리를 놓고 참새들은 무어라 무어라 외쳐 댄다. 초저녁 개구리합창과 뻐꾸기 울음소리, 빠지면 아쉬운 개소리까지. 
한편 입주 1~2주차까지는 지형습득과 걸음이 주된 활동이었다. 나로서는 30년 전 시절을 온전히 만끽할 수는 없다 해도(불가능) 자연이 뿜어재끼는 공기흐름이 흡족했던지 습기 흠뻑 머금은 5단의 날씨였음에도 잠도 잘 자고 아침은 개운했다. 나 또한 마늘처럼 말려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뒤늦게 나의 존재에 위기감을 느꼈던지 고양이 가족은 한동안 계획에 없던 도피생활을 하는 것도 같았다. 

볕 좋은 오후 녘. 시정에 매단 마늘의 마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소향리 개살구, 모과, 소.
/소향리 안남마을

매일 아침의 기상과 함께, 멀리 있지만 뚜렷한 운암산 바위과 대아호 수문은 슬며시 생활의 좌표가 되어 주었다. 비가 오고 흐리거나 완전 맑거나 할 때면 늘 운암산과 수문을 바라보게 됨이 좋았다. 나의 이 걸음을 온전한 자연이라 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다는 의미를 공고히 하려는 속 찬 마음은 도대체 뭐땀시? 
보았던 것들의 기록이 주는 가치를 알기에 나는 매일 매일 그날의 행적을 끼적이고 사진을 정리하고 그 중 한 두 장면은 그림으로 그렸다. 방송케이블은 연결되지 않았지만 나의 고향케이블은 연결이 원활했던 것 같다. 

입주기간 내 마을을 돌아보며 그렸던 20장의 그림
14.5×20.8㎝×20, 종이에 색연필

6월은 날도 좋고 장마기간 전이라 한창 마늘과 양파수확, 모심기가 이뤄지는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이른 아침 남자 어르신들은 트랙터와 경운기랑 씨름을 하고 여자 어르신들은 엉덩이에 가죽소파 부럽지 않을 원형의 농사용 방석을 깔고 앉아 빨간 망에 양파를 넣고 계셨다. 지금이야 옛날 같지 않게 트랙터의 엉덩이로 농사를 짓는 기계화가 상당수 이뤄졌고 하우스를 이용한 특용작물 농사도 많아졌다. 
오래 전 살았던 마을에서는 마늘, 양파보단 손 많이 가는(부모님께 맞은 기억도 많은) 고추농사가 대다수였다. 지금(화산면 운곡리)은 밭에다 검은 테이프를 붙여 놓은 것처럼 인삼재배가 왜 그리 많아졌는가 모르겠다. 아무튼 물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 때의 내가 아니듯이 말이다. 

밭에서 잡초 제거작업 하시는 소순덕 어르신(78). 건강한 마음과 자세에 놀랐다. 마을에서 주로 양파와 마늘, 감농사를 하며 홀로 지내신다
/소향리 안남마을

안남마을의 한 어르신을 200년도 넘은 느티나무 아래 양파 막에서 만나야 할 때가 되었던지 어떤 날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 집 뒤에 살고 계시는 어르신이었고 이미 나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순덕 어르신은 올해 일흔여덟의 연세로 23세 때 익산에서 구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다. 올 초 딸네 집 부엌 냉장고 앞에서 넘어져 오른쪽 발목 부분에 철심을 6개나 박는 대수술을 하여 큰 지네 한 마리 같은 수술흉터를 지니고 계셨다. 어르신은 연신 암시롱 않다고 하시지만 보이는 흉터가 너무 안쓰러웠다. 어르신과는 마을, 가족, 선거, 결혼, 농사, 미래 등의 잡다한 소재로 초여름 저녁을 볶았다. 

소순덕 어르신께 전달한 이야기나눔 기록 소책자.
8p, 종이에 프린트

그러다 어느 날 밭 한가운데 있는 생전에 술만 많이 잡수셨다는 영감님 묘소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담고 싶다 하셨다. 곧장 찍어드린 후 주변 잡초와 꽃나무의 우듬지 절단에 손을 보태기도 했다. 그 날 직접 그린 어르신 그림도 전달해 드리며 관계의 깊이를 더했다. 다행히 소순덕 어르신과의 긴밀함이 안남마을을 대표하는 기억의 소산으로 남게는 되었다. 땅심으로 자신을 덧입히며 강해지는 양파처럼 땅의 기운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 밀당하며 지내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찬란하다.

뜨거운 여름을 먹고 자라는 참깨. 열려라 참깨~ 열려라 완주! 꿀벌이 주문을 건다.
/오산리 신당마을

완주에서의 한 달? 사실 PT발표시간만큼이나 짧다. 그러나 남는 장면이 길다. 나의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연의 습성대로 빠르지 않게 제 때의 기운으로 완만한 뒷산을 오르는 걸음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 곳 고산(高山)은 높은 산들이 많이 있다. 산을 좋아하지만 늘 바라만 보고 사는 현재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라는, 안도감을 얻었다는 것이 입주생활의 큰 결실이라고 자신한다. 문화귀향 활성화 사업의 ‘완주 한 달 살기’에 정말 곧이곧대로 한 달을 산 소년, 어른이 되어 바라 본 고향 완주를 여러 촉수를 이용해 기록해 보았던 소중한 초여름, 방학 같은 시간이었다. 
by 유광식 | 2018/12/05 09:01 | 2018 완주完州 한 달 살기 | 트랙백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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