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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서문]
감나무가 되어버린 유년, 그 찬란하고 그늘진 가지 끝 어딘가에


감나무를 친구처럼 보듬던 한 소년이 있었다. 나뭇가지를 들고 뛰놀다가 수풀 속에 고이 감춰진 큰 누에를 닮은 으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며 알싸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산하의 사계절은 소년에게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성과 시각을 심어주었다. 우연히 새겨진 감각들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소년의 고향 완주의 깊고도 푸른 풍경이 펼쳐진다. 소년은 연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새총도 쏘면서 몸의 감각에 기민해지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아빠의 연장도 만져보고 엄마의 호박부침개를 먹으며 동네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 작은 산골학교의 생활 속에 즐거움과 창피함도 느낀다.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에는 생명력을 지닌 완주의 원초적인 자연이 펼쳐져 있다. 소년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도 자연을 닮아 원초적인 건강함과 흥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함과 대담함은 날것 그대로의 총천연색을 닮아 있다. 드넓은 자연 속에 소박하게 놓인 집들과 생활도구들은 단출해 보이지만 소년에게 수많은 상상력과 가능성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것들로 소년의 세계는 풍요롭다. 하지만 충만한 일상 그 뒤의 결핍과 고독 또한 소년의 마음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 속에 파르르 떠는 소년의 깊은 눈망울이 보인다. 소년은 자연 속에서 자아에 눈을 뜨게 된다.

완주에서의 충만한 일상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소년은 이토록 유쾌하고 순수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사람들과 고향의 모습에 대한 무력함도 점점 스며든다. 소년의 유년은 아름답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가득하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으며 빠져들게 된 회상처럼, 그를 유년으로 이끄는 30년 전의 힘은 비자발적인 기억들이다. 그 기억 속에는 즐거움도, 부끄러움도, 상실과 슬픔도 자리하고 있다. 유년의 터전을 떠나 도시로 편입되면서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된다. 그는 도시로 오면서 유년을 잃어버렸다. 유년의 풍성한 자연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상실의 공간이자 그 터전과 닮은 흔적을 도시에서 찾게 만드는 불멸의 공간이 되었다. 소년이 겪은 상실과 추억은 우리 모두의 유년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각자의 찬란했던 유년기를 생생하게 소환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완주소년’을 통해 한 소년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근원적인 서사로 밀려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5월,
김주혜
by 유광식 | 2019/05/17 08:59 | 2019 출판「완주소년」 | 트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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