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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태그 : 아빠
2019/10/12   완주소년
2017/10/19   97/100 날아 온 빗자루 [2]
2017/10/01   82/100 숫돌에 관하여 [2]
2017/09/16   75/100 안녕~ 누렁아 [2]
2017/09/12   70/100 비닐하우스용 철봉 휘기 [2]
2017/09/06   65/100 아빠표 그네 [2]
2017/07/26   16/100 아빠의 양날면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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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소년
완주소년

2019년 09월 29일 | 232쪽 | 150*223mm | \15,000

ISBN 979-11-967702-0-4 (03810)


유광식 저/ 으름


감나무가 되어버린 유년, 그 찬란하고 그늘진 가지 끝 어딘가에
감나무를 친구처럼 보듬던 한 소년이 있었다. 나뭇가지를 들고 뛰놀다가 수풀 속에 고이 감춰진 큰 누에를 닮은 으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며 알싸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산하의 사계절은 소년에게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성과 시각을 심어주었다. 우연히 새겨진 감각들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소년의 고향 완주의 깊고도 푸른 풍경이 펼쳐진다. 소년은 연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새총도 쏘면서 몸의 감각에 기민해지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아빠의 연장도 만져보고 엄마의 호박부침개를 먹으며 동네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 작은 산골학교의 생활 속에 즐거움과 창피함도 느낀다. 
-서문(김주혜 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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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고 : 100권 (2019.10 현재)
by 유광식 | 2019/10/12 09:56 | • 으름숍 (상점) | 트랙백 |
97/100 날아 온 빗자루
10.19

시골이 평화로워 보여도 가끔은 시퍼런 기운이 맴돈다. 이곳도 또한 삶의 투쟁이 강한 곳이어서 규모가 작을 뿐이지 도시 못지않은 사건들은 빈번할 것이다. 그날은 평온한 날이었다. 군불을 때는 아빠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아궁이 반대편 굴뚝으로 도넛과 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리집 마루와 부엌은 단이 좀 다를 뿐 이어져 있었고, 나는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있고 아빠는 불을 때고 있었던 일상의 풍경 자체였다. 대신 나는 멍을 짓고 있었다. 아빠는 불을 때다 말고 나에게 무엇을 말한 모양이었다. 응답이 없고 두 번째도 응답이 없으니 빗자루와 아빠의 호통 그리고 나의 울부짖음이 하모니를 이뤄 한동안 강아지는 마당을 내주어야 했다. 나는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빠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기로 했다. 얘가 귀가 아픈가, 정신이 도는 건가, 덜 혼이 났는가 하며 병원도 멀고 돈 들어갈 생각에 그 상태를 빨리 깨부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뒤도 안돌아보시고 마당에서 겉으로는 평온한 타작을 했는가 싶다. 두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리고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고 아빠가 보였었다. 그런데 다른 식구들은 보이지 않았었다. 형과 동생은 방에서 으레 있는 일이거니 하며 태연하게 TV를 보고 있었을 테고, 엄마는 장독대에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빠와의 대면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후로 나는 아빠의 말씀이라면 척척 움직이는 착실한 멍멍이로 새로 태어났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후들겨 패야만 교육적이라고 생각하셨는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by 유광식 | 2017/10/19 11:58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82/100 숫돌에 관하여
10,1

시골에서 아저씨들이 공통적으로 들고 다니는 농기구가 낫 아니면 삽이다. 논과 밭에 갈 적엔 어김없이 가지고 간다. 도시라면 식겁을 할 장면이지만 시골생활에서는 개들도 무시하는 아주 평범하고 익숙한 장면이다. 그래서일까, 집집마다 각종 날을 가는 숫돌이 수돗가 한편에 있다. 낫과 숫돌에 물을 찔끔 뿌린 다음, 발로 숫돌을 고정하고 스윽~ 스윽! 가는 아빠의 모습은 숭고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경이 그 자체다. 일명 날을 세우는 작업이다. 세워진 날은 날카롭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손가락 끝으로 선 날을 더듬다 송글송글 피맛을 볼 적도 있다. 금방이라도 암석에서 떼 온 것처럼 큰 숫돌도 있고, 반듯하고 얇은 숫돌도 있다. 발을 세워 숫돌을 경사 세워 흔들리지 않게 잡기도 한다. 나는 그 숫돌로 낚싯바늘을 만들려고 철사를 갈곤 했다. 못도 갈아 본 기억이 있다. 쇠와 돌이 싸우며 쇠는 날카로워지고 돌은 작아진다. 숫돌에는 삽을 갈진 않았고, 부엌칼이나 가끔 쓰는 도끼날을 갈기도 했으나 대부분 낫 전용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여물기계에 붙어 있는 연마석은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무척 위험해서 거칠게 간 다음 숫돌로 미세하게 마무리하는 경우는 있다. 

아이에겐 도구 자체가 어떤 만들기를 상상하게끔 한다. 실행을 북돋는 것 것이다. 그땐 집주변에 많은 나무재료와 연장들이 있어서 즐겁게 가지고 놀았고, 나는 꼬마 만들기 선수였다. 그 이름이 달리 칭해져 손재주 혹은 솜씨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낫 가는 방법을 서울이사 전에 배울 기회가 없었던지라 여태껏 아빠의 칼 가는 기술을 넘보지 못하고 있다. 
by 유광식 | 2017/10/01 20:07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75/100 안녕~ 누렁아
9.16

시골은 고기가 귀했다. 소와 돼지를 기르고 있지만 식용이라기 보단 수입원이었고, 돼지를 1년에 한두 번 동네차원에서 잡아서 먹는 정도였다. 그 다음으로 수난의 대상이 개들이었다. 나는 어느 늦가을쯤에 아빠가 개를 잡는 장면을 여동생과 함께 지켜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개가 우리집 개는 아닌 것 같기도 했는데, 이전에 나를 문 고모네 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미신이겠지만 광견은 죽여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상상이지만 이 또한 재미가 솔찬히 있다. 

장소는 집 앞 윤희네 밭 중간에 있는 감나무 아래였다. 자주 오르던 감나무에 아빠는 개를 묶어 걸고 두어 번 강하게 몽둥이찜질을 했다. 누렁이는 자신의 이야기 한 줄도 못한 채 축 늘어졌고, 그 밑에서는 짚불을 피워 털을 그슬렸다. 그리고선 집으로 가지고 간 것 같다. 그 날 저녁인지 다음날부터인지 며칠간은 누렁이로 추정되는 국을 먹었다. 그러나 나는 누렁이가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냥 맛있게 꾸역꾸역 대신 아무 말도 없이 말이다. 누렁이는 신음만 남긴 채 하늘로 갔고 음식이 되어 나에게로 왔다. 당시 어떤 연유로 누렁이가 찜질을 당해야 했었는지는 몰랐으나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그 감나무도 불쌍했고 멋진 아빠의 모습이 1/100 정도 감해지기는 했다. 

삶의 평온은 어쩌면 잔인함속에 숨어 지낸다는 어떤 단초를 시골의 도살에서 얻게 되었던 것도 같다.
by 유광식 | 2017/09/16 10:34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70/100 비닐하우스용 철봉 휘기
9.12

농자재 중에서 비닐만큼 많이 사용되는 재료도 없다. 잡초방지, 비가림, 보온, 창고 등에 간절하고 설치하기도 쉽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비닐하우스 안이 잡다한 작은 공장과도 같다. 모종 키우기와 고추건조, 농기계 보관 등 농사시즌과 그때그때의 필요에 의해 사용되니 아끼게 된다. 비닐하우스 한 동을 만들려면 미리 대상부지와 일정간격으로 구멍을 뚫어 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 세 명 정도의 어른이 합심해 집모양의 철봉을 땅에 심고 상층 꼭대기에 버팀 철봉을 기다랗게 결속해야 한다. 결합하는 철클립이 있어서 그것으로 봉과 봉을 단단히 한다. 그런 다음 한쪽부터 비닐을 덮어오는 것이다. 찢어지지 않게 잘 덮은 다음 쫄대끈으로 봉 사이사이 비닐을 묶어 잡아 준다. 그런 다음 한쪽은 폐쇄하고 한 쪽은 드나들 수 있게 해두면 끝이다. 하우스는 나름 통풍을 위해 옆라인을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하는데, 이게 다 쫄대끈 덕택이다. 대신 비가 오면 맨 먼저 하우스로 뛰어가 비닐을 내려야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늦가을쯤에 한 번은 아빠가 수확이 다 끝난 집 앞의 논에서 철봉을 휘는 작업을 하셨다. 옆에서 지켜만 보았는데 가히 예술이었다. 몇 군데에 작은 막대기를 박아 기준을 잡은 다음, 한쪽 끝에서부터 반듯한 철봉을 구부리는 것이다. 반대로 한 번 더 구부리면 집 모양의 하우스용 철봉 완성이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동안에는 철봉이 태생부터 완성된 그런 모양인줄 알았는데 이렇게도 만드는구나 하며 그 과정을 보았으니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것이다. 봉이 강도가 세서 튈까싶어 아빠는 나를 가까이 오게 하지는 않았다. 아빠가 그렇잖아도 멋졌는데 더 멋져 보였다. 힘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철봉을 휘는 모습이 어떤 의식처럼 경건했다. 그러면서 논바닥이 주는 편리가 참 많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겨울 빙판이 되어 아이들 차지이니 말이다. 대보름 쥐불놀이까지 끝내면 다시 어른들 차지가 되어 땅을 갈고 볍씨를 뿌려 나락을 키워내는 것이다. 당시 보았던 구부러진 철봉의 라인이 참 고왔다. 
by 유광식 | 2017/09/12 12:22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65/100 아빠표 그네
9.6

나야 혼자라도 뚝딱뚝딱하며 잘 놀지만 형과 동생은 그렇지 못했다. 무얼 하며 놀았을까 생각하면 모를 정도로 따로 놀았었다. 그런 상황에 부족함이 딱히 있었던 건 아니다. 한 번은 아빠가 그네를 만들어 주셨다. 학교에 있는 철기둥 쇠사슬 그네가 바로 연상되었지만 아빠는 소나무 두 그루를 연결하고 질긴 노끈을 이용해 그네를 만들었다. 사실 나 또한 그네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아귀가 약한 아이들이라 노끈을 단단히 묶지 못하거나 높은 곳에서 작업하다 떨어질 위험 때문에 어른들이 미리 시도를 막아서기 마련이다. 그네는 취학 전인 동생을 위해 아빠가 만들어 준 장난감이었다.  

그네는 우리집 근처의 묘소 쪽에 있었고, 나는 그네 근처의 잔디 위에서 사료포대나 비료포대를 이용해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 동생은 그네를 애지중지 하며 잘 태워주지는 않았다. 가을 들녘은 햇살만 봐도 배불렀고 동네 앞길을 지긋이 조망할 수 있어서 관망대가 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동생은 그네를 타며 즐거워했었다. 그네 의자는 소나무를 연결해 만든 것이었는데, 당시 판자가 귀했을 뿐더러 좀처럼 구해지지도 않았다. 아무튼 그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쭐했던 시기였다. 겨울이 와서 그랬는가, 그네가 없어진 후로는 다시 설치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앞으로 뒤로 부모님의 자장가도 한 시절인 것 같다.
by 유광식 | 2017/09/06 12:01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16/100 아빠의 양날면도기
7.26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이 닦는 걸 싫어했다. 나 또한 너무 싫어했지만 가끔 불심검문을 받고는 바깥으로 나가 이를 닦고 와야만 했다. 이를 닦으려면 수돗가로 가야 하는데, 마루에 나가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신을 신고 열 걸음은 가야 한다. 마루 옆 다소 높은 곳의 작은 통 안에 치약과 칫솔, 그리고 아빠의 면도기가 있다. 겨울엔 치약이 딱딱해져서 부뚜막 위에 올려서 해동을 시키기도 한다. 치약도 얼고 가뜩이나 추운 날 밖에 나가 이를 닦아야 하는 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나의 관심은 아빠의 면도기였다. 당시는 면도날을 끼워 면도 대를 돌리면 고정되고 풀리기를 반복하는 양날면도기를 썼다. 거품은 비누로 대신한다. 아빠는 멀리 외출을 가시거나 일정 정도 수염이 자랄 적에 면도를 하셨는데, 작은 거울을 수돗가로 가져가 면도의식을 행하였다. 면도기가 신기했던 것은 날의 모양도 좋았지만 돌리면 물리고 반대로는 풀어지는 나름의 조작성에 있었다. 그러나 집에는 만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 보이는 않는 법칙이 있다. 그 중에는 아빠의 면도기도 해당됐다. 면도날은 얇은 종이에 싸여 작은 각에 담아져 있었다. 당시에 나는 뭐든 내부를 알고 싶어 했기에 몰래몰래 분해하고 조립하는 습성이 강했는데, 면도기만은 예외였다. 재조립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면도를 한 아빠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다. 시골생활에서는 도시에서처럼 매일매일 하지 않기에 더더욱 그래 보였을 수 있다. 이발하고 오신 날은 면도도 함께 하여 더더욱 멋지고 든든한 나의 아빠란 사실에 덩실 기분이 좋았다.  

by 유광식 | 2017/07/26 19:00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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