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on_Archive
by 유광식
태그 : 엄마
2019/10/12   완주소년
2017/10/12   92/100 엄마의 부엌 [2]
2017/10/07   87/100 목욕 하던 날 [2]
2017/10/06   86/100 몸살 나던 날 [2]
2017/09/08   67/100 도넛 먹던 날 [2]
2017/08/11   34/100 구기자를 아끼던 엄마 [2]
2017/08/04   28/100 교회 유치원 [2]
2017/07/11   05/100 교과서 옷 입던 날 [2]
|
완주소년
완주소년

2019년 09월 29일 | 232쪽 | 150*223mm | \15,000

ISBN 979-11-967702-0-4 (03810)


유광식 저/ 으름


감나무가 되어버린 유년, 그 찬란하고 그늘진 가지 끝 어딘가에
감나무를 친구처럼 보듬던 한 소년이 있었다. 나뭇가지를 들고 뛰놀다가 수풀 속에 고이 감춰진 큰 누에를 닮은 으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며 알싸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산하의 사계절은 소년에게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성과 시각을 심어주었다. 우연히 새겨진 감각들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소년의 고향 완주의 깊고도 푸른 풍경이 펼쳐진다. 소년은 연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새총도 쏘면서 몸의 감각에 기민해지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아빠의 연장도 만져보고 엄마의 호박부침개를 먹으며 동네 아이들과 함께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 작은 산골학교의 생활 속에 즐거움과 창피함도 느낀다. 
-서문(김주혜 씀) 중에서






판매가격  15,000원
우편배송  무료

* 온라인서점 알라딘 -  구매하러 가기
* 임의 주문은 
①메일 <yooaull@hanmail.net>로 성함/주소/연락처/수량을 적어 보내 주세요.
   재고 : 100권 (2019.10 현재)
by 유광식 | 2019/10/12 09:56 | • 으름숍 (상점) | 트랙백 |
92/100 엄마의 부엌
10.12

엄마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엄마의 하루 일과 중 상당수를 차지했다. 대신 아빠에게는 소 막사를 관리하는 일이 아침저녁으로 매서웠다. 엄마는 자식들 보육, 아빠는 주 수입원인 소들의 보육을 위해 애쓰셨다. 두 분 다 힘이 드는 일이었지만 도울 일도 못되어 감사함만 일기장에 써내기 일쑤였다. 엄마는 부엌의 대장으로, 주방기구를 아꼈는데 시골이라 변변치도 못했지만 매일매일 행주로 가마솥을 윤이 나도록 닦아 두었다. 나무를 때기에 부엌천장은 까만 숯검정이었고, 귀퉁이에 찬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접시나 칼, 수저, 양념 등이 있었던 것 같고 3단이었는데, 다른 집에도 비슷한 장이 있었다. 나중에 안방으로 냉장고가 들어왔지만 여전히 그 역할이 축소되지는 않았다. 그 옆에는 곤로 한대가 있어 국이나 찌개를 요리하였다. 이후 가스레인지로 대체되었다. 마루로 통하는 콘크리트 바닥에는 상을 놓았고, 이 공간은 야채나 전을 부치는 엄마만의 사랑방이 되어 주었다. 비가 억수로 올 적에 엄마가 그곳에서 호박부침전을 해주면 바로 옆 마루에 삼남매가 앉아 풍경에 간하여 먹던 기억이 좋았다. 엄마의 음식은 기억의 큰 자양분임에 틀림없다. 늦가을쯤 되면 엄마는 점심 후 가마솥에 고구마나 감자 종류를 쪄 두는데, 학교를 다녀오면 가방을 팽개쳐 두고 맨발로 부뚜막에 올라 솥을 열어보는 재미가 솔찬히 흥미로웠다. 

단, 곤로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곤로에 불을 붙이려면 기린표 성냥을 그어 아래 부분에 고여 있는 기름에 불을 붙여야 하는데, 그러면서 검정 그을음이 상당히 올라온다. 그보단 아궁이에 나무를 넣어 불을 지피는 게 훨씬 더 쉽고 빨랐기에 곤로를 곤란하게 할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곤로에 쓰이는 기름은 집 위 칸의 어떤 병에 담겨져 있었다. 간혹 기름을 실에 적셔 콜라나 사이다 병에 둘러매어 불을 붙인 다음 기다려 찬물에 담그면 절단을 할 수 있는데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애꿎은 병만 깨 먹는 것이다. 그런 방법은 어디서 배웠는가 모르겠다. 불을 땔 적에는 아빠나 나, 형이 도맡아 했고 움직이지 말아야 했는데, 엄마는 아이들이 휙휙 돌아다니면서 발에 채이고 수돗가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걸리적거렸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얘기를 귀가 닳도록 들은 것 같다. 그래도 부엌일을 할 땐 엄마의 양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어서 맞는 일은 드물었다. 대신 잘못된 상황이 발생되었다면 재빨리 아빠의 기분을 살펴야 했었다. 마당으로 끌려가 수수 빗자루, 싸리 빗자루, 불쏘시개 등으로 가리지 않고 먼지 나도록 타작을 당한 경우가 있었던지라 조심해야 했다. 맞는 일도 엄마의 반찬이었을까? 
by 유광식 | 2017/10/12 12:06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87/100 목욕 하던 날
10.7

널린 게 개천이고 물이라지만, 정기적으로 엄마는 아이들 목욕을 시켰다. 때를 밀어야 직성이 풀리셨는지 아니면 남 앞에 자식 내보이기 누추하지 않게 하려고 씻겨야 했는지 모른다. 가난한 시절인지라 자식들을 누추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눈치는 애들조차 다 안다. 그러나 목욕은 아이들에겐 정말 귀찮은 일과였다. 그러함에도 해야만 했다.

안방에 빨간 고무다라가 들어오면 일단 긴장한다. 솥에서 끓인 따뜻한 물과 수돗가 차가운 물이 만나 신선이 노니는 탕을 만들고는 한명씩 투입시킨다. 엄마는 셋을 씻겨야 했으니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빨리 나가고 싶어서 발버둥 치다가 타월로 등짝을 맞기를 수어 번. 다 하고 나오면 등짝이 알싸하니 새빨갛다. 하필 때는 왜 그리 많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문을 열면 춥고 누가 볼세라 얼른 닫게 했다. 혹시나 동네 아이들에게 목욕장면을 들킬까 창피했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했는가도 모르겠다. 수영은 수영이되 목욕은 목욕이었다. 수영은 창피하지 않았지만 목욕은 왠지 은밀하단 생각에 노출되기 싫었다. 형과 내가 다 하면 나가 놀고 마지막으로 여동생을 씻겼다. 그 큰 고무다라는 한명밖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무척 무거웠고, 목욕할 때마다 나를 가두는 족쇄와도 같아서 커서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강압도 있었지만 조용히 지켜만 보다 행여 불호령을 내릴지도 모르는 아빠의 모습 때문에 순순히 목욕에 응했던 것 같다. 엄마는 애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빠에게 이르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싫어했던 목욕은 커서는 일과가 되었다지만 가끔 그렇게 박박 때를 미는 목욕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때를 미는 건 싫어졌다. 시골에서의 낙후된 목욕프로세스는 아이들 등짝을 여러 겹 박박 긁어냈을 것이다. 그래도 목욕 후에 엄마는 뿌듯하고 상쾌했던지 약간의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주시곤 했었다. 다들 욕봤던 날이다. 
by 유광식 | 2017/10/07 10:38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86/100 몸살 나던 날
10.6

병치레를 자주 하지 않았지만 가끔 크게 몸살이 날 때가 있다. 부모님은 두 종류의 증상에서 분류했는데, 체한 건지 열이 난 건지를 가려 이에 상응하는 보호를 해주셨다. 체했을 땐 엄마가 바늘로 엄지손가락 등을 따주곤 했는데 두 손 다 따이기가 무서워 괜찮다, 괜찮다 부르짖다가 등짝만 얻어맞고 따이기 일쑤였다. 그런 다음엔 팔을 주물럭주물럭 했고 아빠가 교대해서 등짝을 쓸어내리는 걸 반복하다가 이제 다 됐다 싶은 정도에 크게 한 번 찰싹! 내리치시곤 했다. 그러면 체한 게 처방으로 나은 건지 맞아서 나은 건지 모르게 말끔해졌다. 

열이 나면 좀 복잡해진다. 하루는 너무 머리가 아프고 무거워서 등교를 못하고 방에 있어야만 했었다. 그 와중에 개근상을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교를 안가서 좋았지만 오전의 이상한 적막함을 감내해야 하는 수고가 남아 있었다. 물수건을 이마에 대주고 나가는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다 밭에 일 다녀오겠다고 호미를 챙겨 나가시는데, 나는 그때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나를 두고 어디를 가시려 합니까? 어무이!'라고 말이다. 친구들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소울음과 새소리, 시계초침 소리들만이 서로 경쟁하며 달리는 요상 야릇한 기분에 취해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커서 몸살이 나면 모든 게 정지 상태라 회복에 매달려야만 했다. 어쩌면 그 때보다도 더 견디기 어려운 처지일 수도 있겠지만 시골에서의 내성은 강해 현재의 몸살을 몰살시키는 것도 같다. 

하나 아플 것 없어 보이는 시골아이들도 개중에 연약한 이들이과 튼튼한 이들로 구분된다. 평균치는 웃돌지만 말이다. 나는 건강했던 반면, 형이 가끔씩 좀 아팠다. 자연이 성장을 차별하는 건 아닐 것이고, 자연을 벗 삼아 잘 놀아 준 이에게 기운을 더 주는 것은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by 유광식 | 2017/10/06 11:10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67/100 도넛 먹던 날
9.8

엄마는 가끔 실험적인 간식을 하기도 한다. 요리법은 어디서 들었는지 주저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그날은 도넛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반죽이 관건이 될 듯도 했는데, 당시 밀가루와 설탕은 가정마다 포대로 있었고 다른 재료를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기름이 문제였다. 많은 기름을 부어서 튀겨야 했다. 아깝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도넛 생각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한번 음식을 하면 많이 해두는 편인데 애도 셋이고 기름진 음식은 기회가 많은 게 아니라서 많이 해두는 것이다. 그래 보았자 이틀을 못간다. 

동네는 생활정보가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등이 서로 비슷비슷하다. 그 와중에 아이들 먹이는 것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무언의 대회처럼 치열한 것도 같다. 다음날이면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음식의 순위가 점수와 함께 매겨지니 말이다. 밀가루에 물만 넣은 것 같은 반죽을 둥글게 말아 붙여 뜨거운 기름탕에 넣으면 얼마 후 부풀어 올랐다. 기름은 뜨거워도 보글보글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도넛을 꺼내 조금 식힌 다음 백설탕에 묻혀 먹으면 된다. 그 맛이 아주 맛있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TV나 도시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 깡시골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엄마의 실험이 중요했던 것이다. 

방에서 만들어서 한 일주일간은 기름에 취해 살았던 것 같다. 다음날 물컹해진 도넛을 먹으며 엄마의 능력을 가늠했을 것이다. 엄마는 과연 자연스럽게 요리법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약속을 하고 이행해 본 것일까? 둥글둥글 도넛모양처럼 추억이 구른다.
by 유광식 | 2017/09/08 11:25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34/100 구기자를 아끼던 엄마
8.10

마당 앞쪽은 논이다. 단이 있어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내 키보다 큰 사철나무가 그 역할을 했다. 그땐 무슨 나무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난 그 나무의 반들반들한 녹색 이파리가 좋았는데 비 맞은 잎은 더 없이 매혹적인 떨림이었다. 아이의 눈에 그랬으니 자연은 대단한 것 같다. 사철나무 사이엔 구기자나무가 일부분 자라고 있었다. 심었다기보다는 그냥 자라고 있었다. 나는 구기자라는 발음이 맘에 들지 않았을 뿐더러 조그만 럭비공 모양의 빨간 열매가 줄기를 따라 주렁주렁한 모습이 지네를 연상시켜 혐오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가을만 되면 소쿠리에 한가득 구기자를 따서 말리는 것이었다. 말려 놓으면 빨간 건포도 같았는데, 여하튼 보기가 싫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3대 약재 중 하나라고 하고 시력에 그렇게 좋다니 효능을 몰라본 게 아쉽긴 하다.

늘 녹색 사철나무 사이로 빨갛게 익어 나오는 구기자가 신기했지만 미워만 했으니 괜스레 엄마에게까지 미안한 마음이다. 엄마가 말린 구기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형제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권하진 않았으니 그 행방이 묘연할 따름이다. 

by 유광식 | 2017/08/11 00:58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28/100 교회 유치원
8.4

생활의 반경에서 보자면 북쪽의 한계는 말목재 석천교회이고 남쪽의 한계는 부현의 부편교회라 할 수 있다. 부현은 훗날 같은 학년이 되는 직현이와 은경이, 보배가 살고 있는 부락이다. 직현이는 외동아들(?)인 것 같았고 은경이는 밑으로 두 남동생이 있었다. 보배는 은경이와 붙어 다녔는데 집안 사정은 하나도 모른다.

어느 날 아침에 부현교회로 엄마와 갔다. 우리집에서 가려면 오토바이가 아닌 이상, 시골버스를 기다려 타고 가야하는 먼 거리였다. 도착해 보니 그곳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서로 말똥말똥 눈만 껌뻑거리는 걸로 보니 뭔가 이상은 했다. 순간 엄마가 보이지 않았고 사라진 것 같았다. 어떤 여자 분이 우리들을 교회강당으로 데리고 가서는 율동 같은 것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나의 신경은 온통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동네에서는 혼자서도 잘 놀지만 낯선 환경을 무지 어려워했던 나로서는 낯선 부락에 낯선 교회, 낯선 아이들과의 조우가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엄마는 집을 바로 간 것이 아니고 친하게 지내던 은경이네 집에서 조금 기다려 본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잘 적응을 하는지 말이다. 얼마 후에 엄마가 보이기에 더 서럽게 울었다. 교회 관계자분이 무어라고 얘기해줬겠고, 엄마는 내심 속상해 하셨을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모임은 교회에서 취학 전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인 셈이었고 나는 첫날부터 울어재낀 탓으로 이후 가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은 뭐라 크게 혼내진 않았고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잊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어찌나 낯선 마음에 상처가 깊었던지 그 하루의 일이 잊히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의 이 날의 걱정을 뒤로하고 훗날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기에 쌤쌤인 셈이다. 그런데 왜 부락과 가까운 석천교회가 아닌 먼 부현교회였을까?

by 유광식 | 2017/08/04 22:51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05/100 교과서 옷 입던 날
7.10

시골학교에서는 학년이 바뀌어도 아이들은 그대로이다. 늘 1반이며 그럴 때마다 나는 2반, 3반을 은근히 동경하기도 했다. 그래도 새 학기에 담임선생님은 바뀐다. 다들 누가 될 건지 10명 남짓의 선생님들 중에서 점쳐 보지만, 늘 호랑이선생님(뚱뚱한)만은 꼴찌로 제외한다.

학기 시작 전 아이들의 네모 가방 속엔 교과서가 가득 담긴 채 아이들은 집으로 향한다. 그러다 저녁을 먹고 난 어느 날, 엄마는 형과 나를(여동생은 입학 전) 불러다 교과서를 가져오게 하셨다. 그러고는 중요한 순서로 책을 줄 세우고는 엄마가 쟁여 둔 지난 달력을 가새(가위)로 잘라가며 하얀 옷을 입혀 주셨다. 종이를 접어서 가새로 자르고 하는 것이 신기해서 무릎을 꿇고 빤히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형과 나는 좀 더 깨끗한 종이로 하겠다고 티격태격하고, 달력이 모자라 마지막에 남는 교과서는 으레 음악, 미술, 체육 교과서가 된다. 당시에도 예체능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하얗게 싸인 교과서 묶음을 보며 이제부터 공부 열심히 하고 훌륭한 사람 되자고 가슴 속에 다짐을 해보지만 하얀 달력커버는 3월 한 달을 가기도 전에 벗겨지기 마련이다. 이유라면 커버에 쓴 교과서 제목글씨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굵은 매직(귀했을)으로 엄마가 국어, 산수, 사회를 써 준걸로 안다. 그러나 나는 글씨가 맘에 안 든다고 토라지고 이내 엄마의 손바닥은 활공을 시작했다.

엄마가 가장 참하게 보이는 경우는 책 커버를 싸고 바느질을 할 때였던 것 같다. 그 외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들지 모를 욕과 손바닥을 피해야 하는지 내 몸은 안다. 난 그래도 책이 하얗게 옷을 입던 날, 가슴 속에 꿋꿋한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결심은 오래 가지 않는다. 

by 유광식 | 2017/07/11 00:01 | 2017 완주完州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카테고리
전체
• Notice
• News Clip
• You word
- curriculum-vitae
- cyworld.com


• ARTicle
• 전기조명
• 을유년도
• 개울음악
• 으름場 (대화)
• 으름숍 (상점)


2020 「인천을 걷는 게으름」
2019 출판「완주소년」
2019 모임16시-모 자란
2019 옆집이 이사갔다
2019 사진, 도시를 잇다
2019 얼음집이 녹는다
2018 추적 of Sungui-dong
2018 몸 속 어딘가의 녹음
2018 모여라~틴틴 크리에이터!
2018 완주完州 한 달 살기
2018 모임16시-여기저기
2018 작살Harpoon
2017 모임16시-큼큼
2017 완주完州 이야기
2016 모임16시-예술로 찜
2016 이삿짐Moving
2016 행복지구(영업종료展)
2016 인천Cloud
2015 골목길숨은보물찾기
2015 Dokdo오감도
2015 모임16시-Proposal
2015 두 각을 이루는 곡선
2015 식탁
2014 우현project
2014 Non-Settlement
2014 예술과 안방사이
2014 우현로 35,39
2014 tabloid 항문
2014 모임16시-능동적 프로필
2014 주안7동 1342-6
2014 곰표
2014 ArtParTment
2013 삼합
2013 나의 살던 동네-2
2013 길 위에 서서
2013 모임16시-Presentation
2013 폐허 속에서 발견한..
2013 열우물에 고요히 흩어져..
2013 인간탐구
2012 장봉도project
2012 신나는 자존
2012 NightWalkers
2012 중구 내동176
2012 갈산동 421-1,Cort
2012 인천 앞바다에 왜 사이다
2012 독산동 441-6
2012 홍콩•대만Reporting
2012 플랫폼 아티스트
2011 뽕짝•짬뽕document
2011 PLACE 14
2011 :)얼굴project
2011 You're Incheon
2011 MAIL:gangjung
2011 장봉도project
2011 IAP페스티벌
2011 네모랑 산책가기
2011 잊혀진 섬이야기
2011 열우물art-work
2011 인천상륙作展
2010 Lee;사람
2010 삼박자
2010 열우물art-work
2010 예술이 노니는 마을
2010 Asia and Rice
2010 상상공간-DMZ600리
2010 인정투쟁-당신의no.1
2010 일상의 연필I
2010 金沢•京都Reporting
2010 5월,그 부름에 答하며..
2009 소통&만남
2009 마음의 지도
2009 東川PhotoFesta
2009 억장,무너지다
2009 비정규 차이다?
2009 교육현장
2009 판단중지
2009 변형된 초상
2008 마음의 지도
2008 Gift
2008 시의 변신
2007 인권찾기 미술행동
2007 마음의 지도_인천
2007 설화로 풀어보는 인천
미분류
2007 빛 좋은 인천
2014 日記
2016 面目
2019 순간.팍
E-MAIL
yooaull@hanmail.net
태그

skin by jesse